[예동근의 자투리 생각] 관문도시 부산에서 바라본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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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전쟁 70주년 관련 뉴스를 보면서 동료들과 전쟁의 발발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의 정세를 보면 마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우연적 전쟁 발발의 조짐과 양태가 비슷해 내심 우려스럽다.

최근의 남중국해 충돌, 대만과 중국의 긴장과 갈등, 대선 후 미국과 중국의 갈등, 서아시아에서 나타난 국지전, 중국과 인도의 국경 충돌이 그렇다. 이 사건들처럼 우연한 국지전이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당연히, 아직 종전이 되지 않은 한반도의 상황도 그런 점에서 몹시도 우려스럽다. 한반도는 여전히 ‘동북아의 발칸반도’로 불릴 만큼 위태로운 곳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동북아 주변의 지도자들은 모두 ‘강한 리더십’을 표방하고 있고 그들의 자존심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점이다.

우발적 전쟁 조짐 곳곳에서 보여
상대국 전통 무시는 갈등의 불씨
애국심 부추겨 전쟁 구실 삼기도
내부에서 자발적 변화 이끌어야

전쟁 발발의 우연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국가 간 ‘발가벗기기’식 공격에서도 그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만약 특정 국가가 ‘악의 축’으로 지목된 특정 지도자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그 나라의 종교적 상징성이 있는 전통 복장을 강제로 입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 문화적 충격과 모멸감은 한 세대를 넘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지속할 수 있다. 중국 청나라 때 일이 그랬다. 당시 열강 제국은 중국의 근대화와 문명화를 위한 계몽의 명분으로 청나라 황제의 전통 복장을 서양식 근대 복장으로 바꿔 입도록 했다. 그때 신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 같은 경우 설사 그 국왕이 폭군이라 하더라도 그 나라의 신민 혹은 국민으로서 받은 수치감은 몇 세대가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이다.

특히 정교일치의 나라 또는 굳은 이념을 바탕으로 한 독재 국가 등에서는 지도자들의 덕망, 리더십, 인격 따위를 떠나 외부로부터 ‘발가벗김’을 당할 때 느끼는 수치감은 가장 강력한 전쟁 자원으로 동원될 수 있다. 그것은 그 국가와 민족의 문화, 사상, 전통을 깡그리 뭉개 버리고 무시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옷’을 넘어 ‘정신’까지 발가벗긴 폭력인 것이다.

종교 모독, 국가 모독, 인격 모독은 그 국민이 갖게 되는 수치심을 애국심으로 자발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내재적 자원이다. 일부 통치자들은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할 때 신속하게 확산하는 수치감을 애국심으로 전환시키면서 통치의 지속성을 유지하려 한다. 그들은 이런 대중의 분노를 ‘국민의 명령‘ ‘인민의 명령’으로 바꿔 부르면서 전쟁의 구실로 만들려고 한다.

최근 ‘대만 전쟁 지지론’을 표시한 중국의 한 중학교 교사의 유튜브는 엄청나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만과 전쟁을 벌이면 수개월 치의 봉급을 내놓고, 미국과 전쟁을 하면 5년간의 봉급을 내놓겠다는 그의 애국주의 발언은 치열한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총을 메고 전쟁을 나가겠다는 입장은 표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자신도 전쟁을 무서워하고 그 피해를 알면서 무모하게 전쟁을 부추기고 있거나, 애국주의란 이름으로 도를 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위로는 국가 지도자,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외부로부터 ‘벌거벗김’의 치욕을 당할 때 전쟁의 화약고는 내부에서 먼저 터지면서 외부로 확장해 가게 된다.

사실 일부 국가의 지도자와 언론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명분, 언론 자유라는 명분으로 인신공격에 가까운 ‘벌거벗기기’ 행동을 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 정치 지도자들은 서슴없이 대중 앞에서 인기에 영합하는 발언을 하면서 자신이 세계 평화를 위한 구제자임을 자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구제자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너 죽고 나 살기’ 방식으로 대립 구조를 만들어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전쟁의 발발은 이렇게 ‘벌거벗기기’ 행위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우발적 전쟁 발발을 줄이기 위해 과감하게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게 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중국의 손중산은 서구의 양복을 개량하여 다섯 개의 주머니가 달린 중산복을 설계하였고, 그것이 중국 지도자들의 비공식 의례복이 되고 있다. 이렇게 내부의 자발적, 점진적 변화들이 전쟁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유연화시킬 수 있다.

부산은 이제 동서양의 관문도시, 유라시아 대륙의 관문도시, 평화의 관문도시가 되기 위해 ‘벌거벗기기’의 치졸한 방식이 아니라 ‘새 옷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준비된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는 평화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부경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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