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현실과 싸운 ‘변방’ 지식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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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복무하다 / 권태선



<진실에 복무하다>는 ‘사상의 은사’로서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리영희(1929~2010)에 대한 평전이다. 올해가 그의 10주기다. 그를 꿰는 열쇳말이 ‘변방’이라고 한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평북 북쪽인 운산과 삭주였던 것을 비롯해 그는 한 번도 우리 사회 주류에 속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변방으로 평등주의가 강한 평북의 기풍이 그의 내면 속에서 압록강처럼 흘렀다고 한다.

그를 비판적 지식인으로 만든 것은 한국 현대사였다. 한국전쟁이라는 ‘최고의 압축적 현실’을 미군 지휘권 아래 놓인 한국군(통역장교 7년)으로 체험하면서 한미관계 남북문제 한국정치의 큰 물줄기와 만났다고 한다. 3번의 해직, 5번의 구속을 치렀던 비판적 실천의 지독한 경험을 통해 그 큰 물줄기를 보는 눈은 투명해져 갔다. 한 시절, 그는 비판적 글을 내보내고서 밤에 옷을 차려입고 잤을 정도였다고 한다. 자다가 야밤에 속옷 차림으로 다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국 현대사 대표 지식인 리영희 평전
국제관계 자주성·공동체적 가치 역설

알다시피 그는 냉전 가림막에 가려진 베트남과 중국을 보는 새로운 눈으로 젊은 세대에게 커다란 사상적 충격을 안겼다. 그것은 각고의 노력을 통한 것이었다. 글 한 줄을 쓰기 위해 책 몇 권을 읽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혼신의 노력이 집적돼 ‘전환 시대의 논리’를 직조했고 ‘우상과 이성’의 잣대로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혔다.

1989년 이후 사회주의권 붕괴는 우리에게 대단한 세계사적 충격이었다. 한국사회의 대안을 사회주의로 설정한 이 중의 한 명이 리영희였다. 식자층들은 리영희를 비판하고 비꼬았다. ‘그의 인본적 사회주의는 시장맹(盲)과 북한맹을 배태하면서 우리 시대를 계몽함과 동시에 미몽에 빠뜨렸다’ 따위의 비판이었다.

그는 그 비판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 인간 개조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철회했다. 그리고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하는 입장에서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인간 이성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이란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계급 대신 ‘의식화된 시민집단’을 개혁 주체로 설정했다.

그러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자본주의에 사회주의를 가미한 사민주의 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북한의 획일주의를 정신적 미라 상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국제관계의 자주성, 주민들의 인간적 면모, 공동체적 가치는 높이 샀다. 남북문제도 남한적 경험과 북한적 경험의 변증법적 융합으로써 물질적 충족과 도덕적인 인간-사회 가치가 어울리는 통일민족 공동체로 풀어가자고 했다. 남한은 미국 일변도, 즉 한미동맹 지상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평생의 충정을 다해 말했다. 한반도 현실과 싸운 지식인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는 평전이다. 대표작 글 22편을 실은 선집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도 출간됐다. 권태선 지음/창비/476쪽/2만 5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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