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주의 역사에 총기 들이댄 ‘정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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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 시위대 의사당 점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 모여 있다. 이 중 수백 명은 의사당으로 난입해 원형 홀까지 점거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의 시위대 점거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미국 민주주의의 중심인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면서 미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1·3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했다고 믿는 지지자 수만 명이 워싱턴DC 백악관 앞에 모여 ‘미국을 구하라’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집회 지지 연설을 통해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도둑질을 멈추게 할 것”이라며 대선 불복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위대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 짓는 상·하원 합동회의에 항의하기 위해 의회 의사당까지 행진을 펼쳤다.

백악관 앞에서 집회 후 행진’
유리창 깨고 건물 내부 진입
방위군 투입 4시간 만에 진압
시위 선동 트럼프 비판 직면
폭력·분열 전 세계로 생중계

의사당에 도착한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 의사당 계단을 뛰어올라 갔으며, 일부는 외벽을 타고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문을 두드리며 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유리창을 깨고 건물 내부로 밀고 들어왔다. 트럼프 깃발을 든 시위대는 “트럼프가 대선 이겼다” “의원들, 어디 있어”라고 말하며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의회 보안을 맡은 경찰은 회의장 문 앞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 시위대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겁을 먹은 의원들은 의자 밑으로 피신했다. 시위대는 회의장 창문을 부쉈다. 이에 합동회의를 진행 중이던 상·하원 의원들은 회의를 중단하고 대피했다.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경찰이 최루탄까지 동원했지만 시위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부 시위대는 상원 의장석은 물론 하원 의장실까지 점거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실을 점거한 시위 참여자는 책상에 발을 올린 채 포즈를 취했고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던 사태는 워싱턴DC 경찰이 투입된 데 이어 주 방위군 1100명이 투입되면서 4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하지만 격렬한 대치 상황에서 한 시위대 참여자가 총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숨진 시위 참여자는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디에이고 출신의 애슐리 배빗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현지 언론은 배빗이 미 공군에서 14년 복역하며 네 차례 해외파병 근무를 수행한 재향 군인으로, 남편과 함께 샌디에이고에서 사업체를 운영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3명이 ‘의료 응급상황’으로 숨졌으며, 의사당 난입과 관련해 5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의사당 인근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와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본부 건물에서 파이프 폭탄을 발견해 회수했고, 의사당 경내 차량에서 화염병이 든 냉장고도 회수했다고 밝혔다.

이날 사태는 전 세계에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정치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당초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던 이날 양원 합동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에 불복한 상태라 법적으로 당선인 확정의 마지막 관문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에 종지부를 찍는 날로 큰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선동해 폭력 사태를 촉발했다는 거센 비판론에 직면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에 의사당으로 가서 투표 결과에 반대 의사를 밝히는 의원들을 지지하라며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을 사실상 부추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은 미 국회의사당이 시위대에 속수무책으로 뚫리자 당국의 부실 대응도 비판했다. 이미 예고된 시위인데도 당국이 시위대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소수 인력만 배치한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는 것이다.

양원 합동회의는 6시간 만에 재개되면서 바이든 당선인의 최종 인증은 날짜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에 이의가 제기된 애리조나와 펜실베이니아주의 선거인단 투표가 유효 투표로 인증받았고, 일부 공화당 의원이 주별 선거인단 투표 결과에 대한 반대 의사를 철회하면서 바이든 당선인 최종 인증이 확정됐다. 이날 조지아주 결선투표에서 패배한 켈리 뢰플러 공화당 상원의원은 난입 사건과 관련해 “폭력, 무법과 의회 포위가 혐오스럽다”며 조지아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접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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