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한’ 중대재해처벌법, 노사 모두 ‘개정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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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에만 의의를 뒀을 뿐, 법안 내용은 ‘누더기’에 불과해 노사 양쪽 모두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벌써부터 양쪽 다 개정을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법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사업자나 경영책임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도 져야 한다.

또 하청 기업 직원에게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도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 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며,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부터 시행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50인 미만 사업장, 3년 후 법 시행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대상서 빠져
지역 경영계 “기업 무한책임 가혹”
노동계 “근로자 생명 차별받는 법안”

■재계 “기업 운명, 운에 맡길 상황”

이날 법안이 통과된 뒤 재계는 “기업의 손발을 꽁꽁 묶는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0일 중소기업중앙회 김병수 부산울산중소기업회장은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주를 징역살이 시켜 결국 중소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독소조항만은 빼달라고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주 52시간제 시행에 더해 중대재해처벌법까지 통과되자 너도나도 한국에서는 사업을 못하겠다며 해외로 나가겠다고 한다”고 허탈해했다.

급기야는 개정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10일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는 모두 과실에 의한 것인데, 기업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면 기업의 운명을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이번 입법이 시간에 쫓기듯 이뤄진 만큼, 법 시행 전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일반 다수가 수용 가능한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의무를 부과한 후 사고 발생 시 중한 형벌을 부여해 기업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법”이라며 조만간 보완입법을 요구할 방침이다.

■노동계 “노동자 사망 20% 외면”

8일 국회 본회의 법안 통과 시 기권표를 던졌던 정의당과 노동계 역시 반발하고 있다. 정의당 지도부는 10일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모지에 영면한 고 노회찬 전 의원을 참배하고 노 전 의원의 ‘유지’이기도 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시킨 데 대해 노 전 의원에게 사과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 등은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등은 “노동자의 생명이 차별받는 차별법안”이라며 이른 시일 내 보완입법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 또한 법안 통과 후 “전체 사업장의 8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600만 명에 달한다”면서 “작은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재해사망이 전체 사망의 20%를 차지하는데 이를 제외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마저 찜찜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법안 통과 뒤 “부족하지만 중대재해를 예방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보완해가길 바란다”며 개정을 예고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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