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진실이 숨 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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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희대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어린 시절 엉뚱한 질문과 행동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하나 더하기 하나’ 이야기는 그중 유명한 사례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던 선생님 앞에서 에디슨은 “진흙 덩어리 하나와 다른 진흙 덩어리 하나를 더하면 둘이 아닌 하나의 큰 진흙 덩어리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사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니다. 수학이라는 논리체계를 위한 약속일 뿐이다. 이 논리체계가 실제로도 성립하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개체의 수’를 손쉽게 헤아리기 위한 ‘덩어리’의 개념은 결코 간단치 않다. 부스러질 수 있다거나 이어 붙이기를 하는 등, 실제적인 환경에서는 ‘개체’나 ‘더하기’의 정의가 모호하다. 실제 경험은 이론적인 논리와 달리 거의 항상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착오나 실수와 같은 ‘잘못’ 때문이 아니다. 이론은 항상 실제가 아닌 개념이라는 이상적인 조건에 근거하는데, 그런 이상적인 조건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사실 불행이 아니라 숙명에 가깝다. 이 피할 수 없는 간극을 두고 우리는 늘 고민에 빠지곤 한다. 절대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해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실험은 이론 입증 위한 도구 아냐
이상과 다른 실체 알아내는 과정
진실 밝혀내는 건 우리 모두의 몫

흔히 과학에서 실험은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오해되곤 한다. 많은 학생은 결코 이론의 예측대로 나오지 않는 실험 결과를 보면서 좌절하거나 곤혹스러워한다. 마치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여러 차례 같은 실험을 반복한다. 결국 이론의 예측대로 나오지 않는 결과를 두고 ‘실험 오차’라고 결론을 내린다. 마치 잘못될 리가 없는 이론을 재연하지 못하는 자연을 탓하기라도 하는 모양새다. 생긴 그대로의 경험을 두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바로 잡자면, 그렇게 곧이곧대로 될 것이라고 짐작한 자기의 생각에 잘못이 있는 거다. 최선을 다해 얻은, 있는 그대로의 결과를 ‘실험 오차’라고 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자, 낙담하지 말자. 관건은 이제부터다. 실험의 목적은 바로 곧이곧대로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이상적인 조건과 분명히 다른 숨겨진 실체가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상적인 조건에 근거한 이론적인 예측과 실제 도출된 실험 결과의 차이가 드러나는 바로 그곳에 진실이 숨어 있다. 진실은 바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숙명적인 간극에서 숨 쉬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반인은 에디슨의 선생님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은 에디슨이 생각했던 ‘진흙 덩어리’가 우리의 주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체를 제대로 상정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물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상 경계도 형태도 모호한 ‘덩어리’다. ‘덩어리’가 분명해 보이는 연필 같은 것들조차도 결국 아주 작은 나뭇가루를 단단하게 뭉쳐 놓은 것이어서,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부스러질 수도 손쉽게 합쳐질 수도 있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흙 덩어리도 연필도 변형과 해체, 합치기가 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단단해서 변형되지 않는 물체(강체, rigid body)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모든 물체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변적 덩어리’라는 귀한 과학적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진흙)덩어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결국 더 나아가 덩어리를 만드는 요소들(작은 알갱이들, 물 등)을 넘어 결국 분자, 원자와 이들을 이루는 궁극의 입자에까지 발전하게 된다.

또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합쳐져 형성되는데, 합쳐진 이후 원자핵의 질량은 합쳐지기 이전의 양성자와 중성자 질량의 합보다 작다. 질량의 미세한 차이를 집요하게 측정해 내고, 그 차이가 측정오차를 넘어선다는 실험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보존돼야 할 질량의 일부가 원자핵이 형성되면서 사라진 것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분명히 둘보다 작아진 것이었다. 사라진 질량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아직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진실이 탄생했다. 이 사라진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만큼의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E=mc2)가 핵을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종에 따라 사라진 질량도 다르고 이에 따라 결합에너지도 모두 다르다. 별의 탄생과 핵력의 이용을 가능하게 한 핵융합과 분열이 바로 이 결합에너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미세한 질량 차이를 집요하게 측정해 낸 첨단기술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자연의 진실도 이론과 실제의 숙명적인 간극에서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거의 항상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은 좌절의 연속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날 흥미로운 가능성이다. 이론과 실제의 디테일에서 숨 쉬고 있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마찬가지로 이 틈새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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