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의 지발도네(Zibaldone)] 부산은 지방 도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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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부산을 떠나 산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보다 타향의 지리가 더 밝아진 요즘이지만, 그래도 부산이라는 도시는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뼈와 살 같은 장소이다. 부산을 떠나 보니, 비로소 부산이 보인다고 할까. 이처럼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부산이라면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알고 있었지만, 이제 이런 상식도 바뀔 것 같다는 보도를 몇 년 전부터 접했다. 수도권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천이 부산의 지위를 가져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한때 이국의 물산과 문화로 넘쳐 났던 이 항구 도시가 ‘노인과 바다’만 있는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씁쓸한 농담도 귀에 들어왔다.

부산의 위상 찾는 길은 바로 ‘국제도시’
민족국가 뛰어넘어 외부로 시선 돌려야
혼종의 공간, 문화적 보편성 지향하되
표준에 맞추기보단 새 표준 만들어 내길

곧 있을 선거에서 부산시장 자리를 놓고 후보들이 쇠락해 가는 부산의 발전에 대한 공약들을 너도나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부산의 문제는 비단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공약들의 실행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과 지방의 소멸이라는 구조적인 변화가 지금 부산의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식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문제 제기는 많은데,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생각하면 답답한 현실이지만, 일단 원인 진단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좀 생뚱맞지만 내가 여기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왜 부산은 ‘지방 도시’인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도가 서울이니, 부산은 지방이 되는 것이겠다. 자명한 대답처럼 들리지만, 이 모범 답안에 도사리고 있는 자명성을 한번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지방이란 표현 자체가 바로 수도권이라는 ‘중심’을 전제한 언어 규칙이다. ‘지방자치’라는 용어법은 기본적으로 중심의 개념과 대립한다. 각 지방이 사실상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바로 지방자치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방자치의 의미를 잘 살린 대표적인 곳이 영국이나 일본 같은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때 지방자치의 모범으로 불렸던 나라들조차도 지방 소멸이라는 문제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부산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지방 도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안을 축소해서 보는 근시안일 뿐이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는 급속하게 단일 경제체제로 발전해 왔지만, 이런 통합의 과정이 모든 것을 균질하게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특히 문화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통칭하곤 했던 혼종성의 인큐베이터였다.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한류는 이런 글로벌 문화가 만들어 낸 혼종성의 실체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혼종성 역시 문화가 다양해진다기보다는, 국제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이 국제적인 문화는 바로 대도시 문화의 보편화이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민족국가 자체를 국제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를 연결고리로 삼아서 혼종성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혼종성은 겉으로 보기에 다양하지만, 사실상 국제적인 문화의 보편성을 띠고 있다. 이 보편성을 우리는 선진국 표준이라고 부른다. 표준에 걸맞은 국제도시의 존재 유무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개별 국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편입되었는지 보여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수도권에 인구가 몰려드는 이유는 서울이 이런 국제적 대도시의 표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적응해서 살면, 뉴욕이나 런던 또는 파리나 베를린에 가서도 전혀 낯선 경험을 하지 않게 된다. 당연히 이런 대도시에 양질의 일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이다. 비틀스와 마이클 잭슨을 백판으로 들으면서 성장한 한국의 대중문화가 유럽과 미국의 시장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국제적인 대도시 문화의 보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사실을 뜯어보면, 결론은 부산을 국제적인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국제 표준이란 것은 사실상 기술적 편리성과 수월성을 의미한다. 그 물적 토대의 구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시간은 생생하게 보여 줬다. 부산을 민족국가의 내부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그 외부에 있는 도시로 만들 때, 부산은 더 이상 지방 도시가 아닐 수 있다. 말 그대로 ‘ inter-national ’ 도시의 면모로 새로워질 때, 부산은 더 이상 지방이 아니게 될 테다. 과거 내가 기억하는 부산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 중요한 것은 표준에 맞추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표준 자체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육지가 아닌 해양의 눈을 뜬 발상의 전환만이 부산을 부산답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부산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크라켄(바다의 조류·파도)의 혼돈을 주목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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