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시가 된 아름답고 뼈저린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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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마음을 흔들 때 / 송희복

유튜브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의 ‘동심초’를 듣는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동심초’는 우리 가곡사에서 불멸의 명곡이다. 이 노래 가사의 원본은 1200년 전 당나라 기생 설도가 지은 시다. 그 시를 1934년 김억이 번역했다. 1200년을 뛰어넘어 전해지는 저 노래의 사연은 애달프다. 30세 설도가 11세 연하의 바람둥이 천재 시인 원진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란 가사에 설도의 애달픈 심정이 묻어난다.

‘시로 하는 인생 공부’ 유튜브 강의
총 60회 강의 중 20편 책으로 묶어

<그리움이 마음을 흔들 때>는 노래와 시가 된 아름답고 뼈저린 사랑 이야기들이다. 문학평론가 송희복 진주교육대 교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시로 하는 인생 공부’란 이름으로 60회 유튜브 강의를 했다. 그중 20편을 책으로 묶었다.

책 내용은 흥미진진하다. 시인 윤동주는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라고 시에 적었으나 시 ‘사랑의 전당’에서 ‘순(順)아’라는 이름을 불렀다. 애초의 원고에서는 그 이름을 연필로 새까맣게 뭉갰으나 복원한 것이다.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리감아라.’ 뭉갠 자리에서 격렬한 감정의 흔적을 생생히 느낄 정도였다고. 시인 백석의 나타샤 ‘자야’ 이야기는 좀 알려진 편이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시를 읽으면 마음속에 눈이 푹푹 내리고, 당나귀가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사랑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위대한 시의 사연이 가슴속으로 속속들이 파고든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은 불가사의하다. 일방적인 짝사랑 같은 그 사랑을 단테는 ‘말로 표현할 수도, 생각에 담아둘 수도 없’는 ‘전례 없이 아름다운 기적’으로 만든다. 그게 13~14세기의 일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페트라르카는 성당에서 한 번 본 여인을 반세기 동안 사랑했고 불멸의 서정시집 <칸초니에레>를 썼다.

저자는 정희성의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에 대한 생각도 펼친다. “그리워하는 존재는 그리워하는 존재와 만나서 그리움을 극복해 나간다.” 그래서 한 그리움은 다른 그리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무의미와 무기력에서 해방될 것 같은 감정이 그리움이란다(뇌 과학자 김대식).

30세에 요절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시가 대중가요와 만난 최고의 사례라고 한다. 나애심이 처음 그 노래를 불렀지만 7080에게는 박인희의 노래가 또렷하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서늘한 가슴에도 남아 있는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다시 ‘동심초’의 마지막 구절을 듣는다.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된 삶을 통과하려는 몸짓, 그것이 사랑은 아닐까. 아니어도 좋다. 사랑할 수 있다면…. 송희복 지음/글과마음/279쪽/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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