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대 용역 결과에 소송 제기했다 패소… 가스공사 ‘망신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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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공사 통영기지 배출구를 통해 LNG를 기화시키는 공정에 사용된 바닷물이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통영거제고성어업피해대책위 제공

한국가스공사가 경남 통영 LNG 생산기지 주변 어업피해 조사 용역에서 공사에 불리한 최종 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차 피해를 인정하라는 취지의 판결로, 유사 분쟁의 판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대구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정욱도)는 지난 14일 가스공사가 한국해양대 산학협력단을 상대로 제기한 용역 계약금 반환 청구를 기각하고, 잔금과 이에 대한 연 6~12%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른 잔류 염소 발생원 조사와 소음 현장 실증 실험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용역 목적 달성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고 판시했다. 결과를 뒤집을 만한 오류는 없다는 의미다.

통영 LNG기지 배출수 소음·염소
위해성 인정 어업피해 조사 분석
용역비 반환 소송 ‘적반하장’
550억 피해보상·유사 분쟁 가능성

문제의 용역은 2015년, 가스공사가 해양대에 의뢰한 ‘통영기지본부 운영 및 제2선좌 건설공사 어업피해 추가 조사’다. 이는 가스공사가 2013년 집행한 345억 원 규모 1차 어업피해 보상에서 제외된 염소와 굴 등 패류 소음 피해를 규명하기 위한 절차.

당시 가스공사는 국내에서 염소의 해양생물 위해성이 인정된 사례가 없고, 패류는 청각기능이 없다며 보상 요구를 일축했으나 어민들의 끈질긴 피해 호소에 용역을 통해 피해 여부를 가리기로 한 것이다. 용역 계약 총액은 16억 9400여만 원. 가스공사는 용역 진행 상황에 따라 4차례에 걸쳐 13억 1600만 원을 순차 지급했다. 잔금은 용역이 완료되면 치르기로 했다.

이후 해양대 연구팀은 2017년 3월 최종보고서를 가스공사에 제출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염소와 소음에 따른 어업피해가 인정된다고 결론 냈다. 연구팀은 우선 국내외 논문과 자체 생물검증 실험을 토대로 ‘피해 유발 최소 염소 농도(임계치)’를 L당 0.08ppm으로 설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통영기지 인근 바다 48곳을 지정해 표층, 중층, 저층에서 월 2회 잔류염소를 조사했다. 실측 결과, 기지에서 동쪽(거제도 방향)으로 7km 떨어진 해역까지 평균 0.12ppm의 염소가 검출됐다. 해양생물과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준의 염소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소음 피해 역시, 소리가 생물에 불편한 진동(공명)을 유발한다는 점을 들어 어민 주장에 힘을 실었다. 특히 통영기지 주변은 소음이 큰 대형 LNG 운반선이 매월 10회가량 수시로 오간다. 이로 인한 피해 영향권은 항로 좌우 1.3km, 생산감소율은 7.2%에 이른다고 봤다.

이에 가스공사는 내부 자문단 의견을 근거로 ‘오류 보고서’라며 채택을 거부했다. 연구팀이 잔류염소 임계치를 너무 낮게 설정한 데다, 통영기지에서 배출수 잔류염소 농도를 0.1ppm 이하로 관리 중인데 실측치 평균이 이보다 높게 나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가스공사의 거듭된 요구에 연구팀이 ‘수정 불가’ 입장을 고수하자 가스공사는 용역계약을 파기하고 기성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가스공사는 궁색한 처지에 놓였다. 단일 기업 세계 최대 LNG 수입원인 가스공사가 공기업의 공적 의무를 외면한 채 스스로 발주한 용역 결과를 거부하다가 법원에서도 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판결대로라면 가스공사는 군말 없이 해양대 용역 결과를 수용하고 최대 550억 원으로 추정되는 추가 피해 보상금까지 어민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게다가 국내 다른 LNG 기지도 이와 유사한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거제통영고성어업피해손실보상대책위원회 손병일 위원장은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공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지금이라도 결과를 인정하고, 보상과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진 기자 m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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