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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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영화’라는 혁명적 매체가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조선인 가운데 가장 먼저 영화를 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부산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으로 유입된 영화는 개항과 함께 신식 문물의 관문인 부산에 상륙해 일본인 거주지 인근에서 상영됐을 것이다. 부산에는 이미 영화가 들어오기도 전에 극장 같은 곳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식 기록은 없지만 정설로 통한다.

국내 첫 영화제작사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1924년 문을 열었다. 당시 부산 중구 대청동, 지금의 복병산 아래 동광동 5가 일대다. 민족영화 ‘아리랑’을 만들기 전 나운규가 여기 몸담았다. 감독이자 배우인 안종화와의 친분으로 배우로 영입된 나운규는 부산에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두 사람은 매일 의기투합해 밤새도록 연극과 영화를 논하고 당찬 포부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나운규가 단역으로 데뷔한 ‘운영전’을 비롯해 ‘해의 비곡’ ‘암광’ ‘촌의 영웅’ 등 4편의 영화가 조선키네마에서 만들어졌다. 조선키네마는 일본 자본으로 세워졌으나 걸출한 한국인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다. 스타로 발돋움한 이월화, 이월화가 경계할 정도로 빛을 발했던 이채전, 유명 야구선수 출신의 몸짱 이주경, 전도 유망한 신인 김우연 등이 그런 이름들이다. 조선키네마는 비록 1년 만에 사라졌지만 초창기 한국 영화의 요긴한 자양분이었다.

한국전쟁 때 영화인들은 피난수도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1950년대 말엔 국내 최초의 영화상인 ‘부일영화상’이 제정됐다. 한국 영화의 중심지가 부산임을 웅변하는 역사들이다. 1960~70년대와 1970~80년대 한국 영화의 전성기는 여배우들이 견인했는데, 1세대 트로이카(문희·남정임·윤정희)와 2세대 트로이카(유지인·장미희·정윤희) 중 윤정희와 정윤희는 태어난 곳 혹은 자라난 곳이 부산이다. 한국 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은 1990년대 이후 부산 배우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부산 출신이거나 부산의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던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충무로로 진출했다.

최근 부산영상위원회가 부산 출신 배우 113인의 프로필을 수록한 전자책을 발간했다는 소식이다.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출향 배우들을 소개하고 연기 활동을 지원·홍보하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낯선 이름들이 많지만 한국 영화의 미래를 이끌 큰 나무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더불어 ‘영화의 고향’ 부산의 문화 유전자를 지닌 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보탠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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