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의인의 스무 번째 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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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2001년 도쿄도 신주쿠구 JR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숨진 의인 이수현 씨의 스무 번째 기일이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고인의 숭고한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올곧은 신념과 희생정신 없이는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뒤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경을 초월한 고인의 희생정신은 한·일 간 깊은 갈등의 골을 뛰어넘는 가교 구실을 해냈다.

일본에서는 매년 고인의 기일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든 시기를 관통하는 올해도 일본은 고인을 잊지 않았다. 고인의 20주기를 맞아 신오쿠보역 헌화를 시작으로 추모식이 열렸다. 대규모 모임이 어려운 시기여서 참석 인원은 대폭 줄여야 했지만, 고인의 뜻을 기리는 추모 열기는 예년만큼이나 뜨겁고 깊었다.

한국에서도 고인이 묻혀 있는 영락공원에서 기일을 맞아 2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고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듯 많은 비가 내렸지만, 추모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인의 뜻을 기렸다. 마루야마 고헤이 주부산일본국총영사가 행사에 참석해 헌화했으며, 고인과의 인연으로 첫 평전 <이수현, 1월의 햇살>을 출간한 장현정(작가) 호밀밭 대표가 고인의 묘비에 책을 헌사하기도 했다. 추모시가 낭독되고 바이올린 연주도 이뤄졌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기 위한 노래 ‘천의 바람이 되어’가 추모식을 적셨다.

취재차 부산 추모식을 처음 찾은 가네다 다이 서일본신문사 기자는 고인의 어머니 신윤찬 씨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가네다 기자는 “어머니가 참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고인의 어머니가 20년간 한결같이 고인을 추모하며 장학사업 등을 통해 고인의 뜻을 이어 나갔기에 오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관계가 안 좋지만 하늘에 있는 아들이 마음 아플까 봐 더 힘을 내기로 했다”는 고인의 어머니. 마감을 이유로 직접 찾아뵙지 못해 더욱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한·일 관계는 갈수록 냉랭해지고 있다. 코로나19까지 겹쳐 문제 해결이 요원해 보이지만, 국경을 뛰어넘는 고인의 정신을 떠올리면 해법이 있을 것도 같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수현 정신이 살아 있듯,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의 물결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윤여진 국제팀장 only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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