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의 세상 터치] 짜장면이든 짬뽕이든 맛이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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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지난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미·중이 주도하는 G2(주요 2개국)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경제와 외교 등 여러 방면에서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이 오늘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 자리를 놓고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배경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이 있다. 그는 1978년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노선에서 개혁·개방을 표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해 밀어붙였다. ‘죽(竹)의 장막’에 갇힌 중국을 세계 최강국 미국에 도전장을 내미는 나라로 키운 첫걸음이었다.

덩샤오핑의 노선은 그가 1962년 처음 언급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유명하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뜻이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면 최고라는 게 덩샤오핑의 생각이었다. 가난에 허덕이던 중국에 상전벽해 같은 초고속 발전상을 안긴 사회주의 시장경제 정책의 모태가 된 논리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중국 공산당이 1993년 개정한 헌법에도 명시돼 중국인을 번영의 길로 이끌고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검든 희든 쥐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중국 실용주의 노선으로 G2 성장

우리 정치권 협치보다 정쟁에 혈안
국민 입맛과 민심에 맞게 거듭나야

빈사 상태·위기 상황에 암울한 부산
유연성·유능함 갖춘 시장 선출되길


중국이 흑백을 가리지 않는 실용주의를 취한 것과 달리, 우리는 흑과 백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흑백논리로 국력을 낭비한다. 어느 한 편에 지나치게 편중된 것도 모자라 피아를 가른다. 심지어 상대방을 부정하는 극단주의 성향을 강하게 보인다. 여야 정당은 이념이나 당리당략에 치우쳐 민생을 등한시한 채 볼썽사나운 정쟁을 일삼기 일쑤다. 2012년 여야 협치를 강제한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됐으나, 10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협치는커녕 여야 간 극심한 다툼이 지속되고 있다. “새는 좌우 날개의 균형으로 난다”는 세간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정치권이 국민을 먼저 바라보지 않고, 진보·보수 양극단으로 나뉘어 국론을 분열시키는 핵심 지지자들만 의식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짜장면론’으로 보수층의 지지를 호소해 정파성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는 SNS를 통해 짜장면을 우파, 짬뽕을 좌파에 비유하고는 자신이 ‘보수의 적자(嫡子)’라고 강조했다. 보수 색채의 선명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합리적 보수나 중도 성향의 다른 야권 후보들과 차별화해 보수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울·부산시장 보선에 직면한 유권자들은 나 후보가 얘기한 짜장면(야당)과 짬뽕(여당)을 두고 선택에 고심이 클 듯하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흔히 중국집에 가서 메뉴를 쉽게 정하지 못해 갈등에 휩싸이듯이. 성추문으로 보선을 초래한 단체장들이 소속한 더불어민주당에 책임을 물어 심판하고 싶지만, 환골탈태가 미흡한 국민의힘을 선뜻 신뢰하기엔 마뜩잖다는 사람이 수두룩한 까닭이다. 최근 부산 시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당에 대한 지지율이 부동층이 많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여권의 잇따른 패착에 따른 반사이익에 기대어 부산의 민심을 반영하는 데 소홀한 탓이기도 하다.

비슷한 고민이 선거철마다 국민 사이에 반복된다. 여야와 후보들이 상호 비방과 난타전으로 정치 혐오감을 심어 준 데다 식상하고 자질 없는 후보가 난립해서다. 덩샤오핑이 흑묘백묘론을 외치며 개혁·개방을 강력히 추진한 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정치권에 짬뽕이든 짜장면이든 국민이 맛있게 느끼도록 정성껏 잘 만들겠다는 소명감이 요구된다. 짬뽕과 짜장면을 합쳐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 짬짜면은 금상첨화다. 극단적인 진영논리 대신에 덩샤오핑처럼 유연한 사고로 상대를 끌어안는다면 유동층과 중도층마저 환영하지 싶다.

부산시장 후보들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지역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해 돌파구를 마련했으면 한다. 부산은 빈사 상태에 빠져 있다. 1995년 400만 명에 육박한 인구는 27일 현재 339만 명으로 감소해 머잖아 인천에 제2 도시 자리를 빼앗길 판이다. 부산경제 침체의 장기화와 일자리 부족으로 젊은 층의 타지 유출이 많고 초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돼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이번 보선이 대형 현안인 가덕신공항 건설과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좋은 일자리 창출, 국내외 기업 유치, 고부가가치 첨단산업 육성 등에 필요한 묘책과 실현 가능한 공약이 넘치는 정책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 극복과 지역의 미래를 위해 대안을 제시하며 당론과 이념을 떠나 시민을 통합하는 혁신적인 정치와 유능한 리더십을 가진 부산시장을 기대한다.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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