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옮겨질 때만 해도 숨 붙어 있었다” 아들 잃은 엄마의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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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방청석 1열] 호텔방 죽음 방치 사건 첫 공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우리 아들을 위해 피고인에게 엄벌을 내려주세요.”

26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제301호 법정. 20대 아들을 하늘로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가 재판부를 향해 울먹이며 슬픔을 토해냈다. 어머니의 발언이 이어지자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피고인석에는 상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가 푸른 수의를 입은 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법원은 이날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5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301호 법정 안은 피해자의 유족과 지인들로 가득 들어찼다.

“억울함 풀 수 있게 피고인 엄벌”
“제대로 된 사과 없었다”며 울분

A 씨는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11시 40분께 부산 부산진구의 한 술집 주변 도로에서 피해자 B(23) 씨를 걷어찬 뒤 멱살을 잡고 넘어뜨려 의식을 잃게 하고, 주변 호텔 방에 그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경찰 조사 단계에서는 폭행치사 혐의를 받았으나, 검찰은 상해치사를 적용해 기소했다. A 씨가 B 씨에게 입힌 신체적인 상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왼쪽 후두부 경막 외출혈, 왼쪽 후두골 골절 등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안 결과와 당시 사건 현장을 비추던 CCTV 영상 자료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재판부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사건 당일 A 씨는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은 B 씨가 도로에 누워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당시 A 씨와 함께 술자리를 하던 일행 4명도 함께 있었지만, 구호 조치는 없었다.

이들은 119에 신고하지 않고 의식을 잃은 B 씨를 인근 호텔 방에 홀로 눕혀둔 채 자리를 떴다. 검안 결과 B 씨는 호텔 방에 옮겨질 때만 해도 숨이 붙어있었다. 다음날 새벽 2시 호텔 방에 홀로 눕혀진 상태에서 B 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A 씨 일행 4명은 현재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부산지법 형사 6부 최진곤 부장판사가 A 씨의 범죄 사실을 하나둘씩 말하자 법정 방청객들의 시선은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A 씨는 이날 제기된 범죄 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A 씨 변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사건으로 피해자 유족분들께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줬다”며 “피고인 측이 피해자 유족을 찾아 사죄하려 했으나,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에 “피고인 측과 피해자 유족과의 소통 채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변호인 진술이 끝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족들은 즉각 항의했다. 유족은 재판장을 향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구했다. 숨진 B 씨의 어머니는 “변호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피고인 측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영장실질심사와 공판 전 본인들에게 필요할 시점에만 형식적으로 연락을 해왔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A 씨 일행 4명도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B 씨 어머니는 “일행들은 상해치사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로서 할 말이 없지만,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이들에게 꼭 엄벌이 내려져야 한다”며 “아들은 아무도 없는 차가운 호텔 바닥에서 생을 마감했다. A 씨와 일행들은 아들을 방에 눕혀둔 뒤 아무런 조치도 않고 옆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돌아갔다”고 엄벌을 촉구했다.

재판부는 “애지중지하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위로가 될 순 없겠지만, 재판부는 법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위해 법리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공판 기일은 3월 초로 잡혔다.

기일 선고가 잡힌 뒤에도 방청석에 있던 유족과 친구들의 울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A 씨가 고개를 숙인 채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가자 한 여성 방청객은 A 씨를 향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B 씨의 이모는 재판부를 향해 “사건 이후에 가족들 모두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있다. 부디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 달라”는 말을 남기며 법정을 빠져나갔다.

김한수·곽진석·변은샘 기자 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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