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멍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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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부장

멍이 든다. 죄 없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멍이 든다. 붉고 푸른 멍은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생겨나고 있을 수 있다. <아빠의 술친구>와 <그렇게 나무가 자란다>는 폭력에 멍드는 아이를 보여준다. 김흥식 작가의 글은 폭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고정순 작가는 비폭력을 위해 힘들게 폭력을 그려냈다. 이들이 함께 만든 두 권의 그림책은 아동학대의 현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아빠의 술친구>는 ‘아빠의 주먹은 술을 마신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먹과 함께 술을 마신 혓바닥은 소리를 지른다. 술 취한 주먹은 엄마와 주인공을 두들겼고, 때론 발까지 가세한다. 달아나고 싶지만 엄마 때문에 참았는데 엄마가 먼저 집을 나갔다. 주인공은 아빠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빠처럼 내 주먹도 술에 취하면 어쩌지?’ 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인공 마음의 멍까지 보여준다.

<그렇게 나무가 자란다>는 폭력의 대물림을 이야기한다. 매일 밤 아빠는 주인공에게 나무를 심었다. 아침이 되면 밤새 자란 나무에 색색의 열매가 맺혔다. 열매는 멍이다. 아빠는 다른 사람이 못 보도록 열매를 숨기라고 말한다. 그래야 같이 살 수 있다고. 반복되는 폭력은 주인공의 마음까지 장악한다. 그는 아빠가 자신에게 심은 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심는다.

<우리 집에 늑대가 살아요>는 가정폭력에 용감하게 대처한 모녀의 이야기다. 발레리 퐁텐과 나탈리 디옹이 묘사한 ‘늑대’는 아동학대 사건에서 자주 발견되는 가해자 유형이다. 엄마의 새 배우자인 늑대는 처음에는 다정하다가 점점 폭력성을 드러낸다. 엄마는 점점 위축되고, 늑대는 주인공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주인공은 멍 때문에 여름에도 짧은 소매 옷을 입을 수 없게 된다(그림).

담요를 뒤집어 쓰고 밤을 지새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여기를 떠날 거야.” 엄마와 함께 주인공은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로 갔다. 늑대가 없는 새 집에서는 더 이상 멍들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잠이 든 아이의 모습에 수많은 아동학대 희생자의 얼굴이 겹친다.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마주하는 폭력과 학대는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마음을 병들게 하고 생명까지 위협한다. 위기의 아이들을 더 빨리 구했어야 했다. 아이들이 멍드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제도로 미리 막았어야 했다. 모두 어른의 책임이다. 웃으면 반달이 되는 눈이 참 예뻤던 정인이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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