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세상의 모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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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팸’. 가출과 가족을 뜻하는 ‘패밀리’의 합성어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서로 모여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영화 ‘꿈의 제인’에서 처음 접한 용어다. 제인은 술 파는 바 ‘뉴월드’의 가수. 그녀의 집은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가출팸이다. 제인이 무대 위에서 한 독백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쭉 이어지는 기분, 근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이런 X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서 뭐 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

가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의 명절 설이 다가오는 요즘이야말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기에 적합한 시기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민법은 가족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현실은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전형적인 가족으로 인식되던 ‘부부와 미혼자녀’ 가구 비중은 2019년 29.8%까지 줄었다. 1인 가구 수는 같은 해 기준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조사 결과 10명 중 7명이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데 동의했다. ‘4인 가족 기준’은 기준의 자격을 상실했다.

가구별로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은 세대주가 신청해 받았다. 그런데 이의신청이 무려 7만 건에 달했다고 한다. 세대주가 수령한 지원금이 세대원에게 쓰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세대주가 가족을 대표하지 않는 수많은 경우가 있었다. 현행법과 제도는 다양한 가족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최소한 기본적인 가족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까지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때다.

여성가족부가 법률적 혼인제도 밖에 있는 비혼이나 동거도 정부 정책에서 가족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여가부는 26일 온라인 공청회에서 ‘2025 세상 모든 가족 함께’라는 제목으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전문가와 일반인의 의견을 들었다. 민법이나 가족관계법 등 법률을 개정하는 문제는 여가부 혼자서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전통적인 가족을 해체하거나 동성애 가족을 만들려고 한다는 오해에서 나온 반대 의견도 있다. 새로운 가족 제도가 잘 정착하려면 사회적 공감대 확보가 필요해 보인다. 영화 속 제인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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