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892 >올 설엔 ‘생활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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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올 설에 아이들한테는 작년에 커서 못 입혔던 개량한복을 입혀야겠다.’

이 문장엔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 없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개량한복’이다. ‘개량(改良)’은 나쁜 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고친다는 말. ‘개량종, 개량품’이나 ‘개량아궁이, 품종 개량’에서 보듯이 좋지 않거나 나쁜 것을 쓰기 좋게 고쳤다는 얘기다. 한데, ‘전통한복’은 입기에 조금 불편할 수는 있어도 나쁜 건 아니니 변형하는 게 개량이 될 수는 없다. 대신 표준사전엔 이런 말이 실려 있다.

*생활한복(生活韓服):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활동성을 강조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든 한복.

그러니 개량한복은 버리고, ‘전통한복/생활한복’으로 구별해 쓰면 되겠다. 그나마, 한복은 이렇게 정리할 수나 있지만, 아직도 혼란스러운 게 ‘시장’이다.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2009년 12월 30일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약칭 ‘전통시장법’, 2010년 7월 1일 시행)으로 바뀌면서 정부에선 ‘재래시장’을 ‘전통시장’으로 바꿔 쓰지만, 아직도 표준사전엔 ‘재래시장’만 올라 있기 때문. 이러니 언론은 물론 시민들도 ‘전통시장·재래시장’을 섞어 쓰는 판이다. 하지만 재래식 공법, 재래식 무기, 재래식 화장실에서 보듯이 ‘재래(식)’에는 뭔가 후지고 뒤떨어진 듯한 느낌이 있어서 재래시장보다 전통시장을 권한다. 표준사전에도 ‘전통시장’이 곧 실리기를….

말은, 상황이나 현상을 설명하거나 규정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이끄는 힘도 없지 않다. 그것 때문에 ‘간호원’을 ‘간호사’, ‘파출부’를 ‘가사도우미’로 바꿨다. 말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인 것. ‘경술국치’를 ‘국권피탈’,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 해운대구청이 새해를 맞아 ‘환경미화원’ 명칭을 ‘환경공무직’으로 바꿨다는 기사가 얼마 전 <부산일보>에 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청소부’에서 바뀐 호칭이 최근 다시 바뀌는 중인 것. 한데, 살짝 혼란스러운 구석이 있다. 기사는 해운대구청에 앞서 부산 사하구청과 경북 상주시청이 ‘환경공무직’, 부산 남구청 금정구청 강서구청 등이 ‘환경관리원’, 서울시청이 ‘환경공무관’으로 바꿨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 이렇게 명칭이 혼란스러워진 것은 기초지자체에서 고용한 직원들 명칭을 일괄적으로 바꾸기 어려워 각 기초단체에 맡긴 결과라고 한다. 이 때문에, 같은 일을 하지만 기초단체 경계를 넘으면 이름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 사소하다 할 수도 있으나, 결코 간단치도 않은 문제다. 이렇게나 혼란스러운 명칭을 하나로 만드는 수가 없을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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