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사전협상 제도’와 지역거점 개발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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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작년 말 부산의 가장 뜨거웠던 도시개발 이슈는 ‘사전협상 제도’였다. 첫 사전협상제 대상지는 해운대구 재송동 유휴 부지인 옛 한진 컨테이너 야적장(CY)이었다. 부산시는 ‘한진CY 부지’ 사전협상용 지구단위계획 과제 수행을 위해 전문자문단 구성, 시민토론회 개최, 시의회 조례 제정 등 절차를 밟아 나갔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건축·도시계획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상업지역에 어울리는 사업 내용으로의 변경과 학교 배치 등 여러 보완 사항이 지적됐다. 시민단체에서는 공공성 결여, 시민 소통 부족을 이유로 사전협상제에 대한 근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작년 말 두 번의 재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시는 올해 마지막 3차 회의에도 기존 안건을 그대로 상정할 태세다.

작년 옛 한진CY 부지 개발 계획
부산 첫 사전협상제 대상 이슈

공공기여 논쟁 넘어 공공성 부상
철저한 조사로 사전 계획 세워야

사업 과정 투명성·민주성 확보
부산도 타 사례 연구 보완해야


사전협상제는 2009년 서울시에서 처음 시작됐다. 잠재력이 큰 미개발 또는 저개발 부지의 전략적 개발을 위한 도시관리계획 변경 과정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용도 지역의 건축물 높이 조정에 대한 특혜 시비를 없애고, 용도지역제가 갖는 경직성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제도 논쟁의 핵심은 ‘공공기여’ 부분이다. 도시관리계획 변경으로 인한 토지 가치 상승 등 개발이익을 어떻게 공공에 환원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통상 도시개발사업 시 공공기여 방법은 토지 일부의 소유권을 공공으로 이전하는 무상 귀속이나 기부채납, 또는 조세나 부담금처럼 개발이익의 일부를 국가에 직접 헌납하도록 하는 개발이익 환수 제도와 같은 적극적인 방법이 있다. 이 밖에 공개공지 등 소유권 이전 없이 공공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위원회 심의 등을 통해 계획적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식도 있다.

최근 국토부에서 발표한 대상지 적용면적 확대 시행(1만m² 이상에서 5000m² 이상)과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자동 실효 등은 앞으로 사전협상 대상지의 수요를 촉발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공공기여 산정 방법의 불확실성, 사업 내용과 관련된 공공성에 대한 불명확함, 제도 운용의 미숙함 등은 사업의 전반적인 진행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 서울시는 대상지로 선정된 16개 지역 중 현재까지 4곳 정도 협상을 완료했다. 서울시는 사업을 추진해 온 지난 10년 동안 4번이나 사전협상 제도를 수정했으며, 지난해에도 제도 전반에 걸쳐 개선 방안 용역을 진행했다.

현재 부산과 서울 등 우리나라 대도시의 상당한 지역은 도시 기능에 변화를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예전 기능이 쇠퇴한 지역도 있고, 공간 구조상 새로운 기능이 필요한 곳도 있다. 예를 들어 도심에는 철도나 컨테이너 부지 등 예전 기능이 소멸한 지역은 물론 도심 공장의 외곽 이전으로 인한 유휴 부지도 상당히 존재한다.

패트릭 게데스나 루이스 멈포드 등 세계적인 근대 도시계획 학자들은 “도시는 역사적으로 발생 초기 사회핵으로 출발해 성숙기의 복잡한 형태를 거쳐 노령기의 물리적 와해 단계에 이른다. 공간적으로도 생물의 천이 과정과 유사하게 쇠퇴 지역이 발생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과정에 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지역 쇠퇴를 방지하고 새로운 지역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도시계획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오랜 주장이다.

도시재생의 세계적 사례로 꼽히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박물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박물관 등은 이전 쇠퇴한 공장 지역을 재생해 지역거점 개발로 이끈 좋은 사례다. 부산의 F1963도 옛 고려제강의 수영공장이 복합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된 경우다.

사전협상제는 지금까지의 공공기여 논쟁을 넘어 지역의 공공성 확보를 통한 지역거점 개발 측면에서 근간을 마련해야 한다. 성공적인 지역거점 개발을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조사·분석을 바탕으로 철저한 공공성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시민 참여를 통한 투명성과 민주성이 강화돼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부산에서 진행 중인 한진CY 부지 건은 이런 측면에서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사업자 측의 계획에만 의존한 채 사업 내용도 생활형 숙박시설 등 주거시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공성 확보 측면에서 지역거점 개발이라는 사전협상 제도의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주거 사업 성공으로 인한 현금 등 공공기여금의 최대 확보가 결코 제도의 근본 취지가 될 수 없다. 부산은 서울시의 사례를 꼼꼼히 다시 연구하고 자체적으로 사전협상제가 예상되는 대상 지역의 도출과 제도 운용 등 보완에 고민해야 한다. 이제 막 전국적으로 시작된 사전협상 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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