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가 다윗이고 누가 골리앗인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종열 경제부 금융팀장

영웅물을 좋아한다. 다만, 영웅의 이야기는 동경하지만 내가 영웅이 될 수 없으니 공감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좋다.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는 것보다 보통사람이 거대권력에 맞서 이기는 영화를 볼 때, 그리고 아주 드물게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나는 더 큰 쾌감을 느낀다. 단지 그 이유에서다. 최근 미국의 개미들이 공매도 세력을 무릎 꿇렸을 때에도 나는 같은 이유로 통쾌했다.

얼마전 미국의 개미들은 자신들의 향수 어린 게임팩 유통업체 ‘게임스톱’이 온라인화를 선언하자 장미빛 기대와 함께 게임스톱 주식을 사들였다. 주가는 오르기 시작했고, 이번엔 헤지펀드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펀드들은 ‘게임스톱의 주가가 과대평가됐다’며 공매도를 걸었다. 성난 개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반(反) 공매도’ 깃발 아래 모였고, 일제히 게임스톱을 조준해 ‘매수’ 방아쇠를 당겼다. 지난달 초 10달러 언저리에 있던 게임스톱의 주식은 지난달 말 483달러(장중)까지 치솟았다.

美 공매도 세력 이긴 개미들 큰 화제
억지로 끌어올린 주가 적절한지 의문
자산가치 버블로 임금가치 하락 우려
땀 흘린 노동이 대우 받는 사회 돼야

내릴 것 같은 주가가 오히려 치솟자 공매도 세력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미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게임스톱 공매도 세력의 손해는 우리 돈으로 22조 원을 웃돈다. 일부 헤지펀드는 수조 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공매도 계약을 종료하기도 했다. 세간은 개미가 거대 헤지펀드를 굴복시킨 월가 초유의 사건으로 회자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다고도 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통쾌하다.

그러나 통쾌함의 여운이 그다지 길지 않았다. 사실 난 아직 공매도의 장점과 단점 중 어느 것에 손들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것이 거대자본에 좀더 이로운 ‘기울어진’ 제도라는 점 정도의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공매도 세력이 마치 물리쳐야 할 악(惡)의 존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개미들이 선(善)한 존재라서, 개미의 승리가 기쁜 것도 아니다. 나의 기쁨은 그런 정의로움과는 다소 멀다. 그것은 그저 앞서 말했듯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단순한 통쾌함에 지나지 않는다. 다윗이 선이고 골리앗이 악이라는 전제는 어디에도 없다.

통쾌함이 사라지자 새로운 물음표들이 하나씩 빈 자리를 채웠다. ‘누가 이겼나’가 아니라 ‘누가 맞았나’가 궁금해졌다. 게임스톱의 적정 주가는 얼마인가, 개미들이 주가를 수십 배 올렸다고 당초 ‘주가가 과대평가됐다’던 펀드의 판단이 잘못된 것인가 등등….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장중 400달러 위로 치솟았던 게임스톱의 주가는 이후 롤러코스트를 탔다. 심지어 그 덕분에 미국을 비롯해 각국의 증시도 함께 출렁였다. 게임스톱의 현재 주가는 2일 종가 기준으로 90달러다.

다윗과 골리앗의 개념도 흔들렸다.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에 따르면 이번 ‘반 공매도 대첩’을 이끈 미국의 개미장군은 무려 3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주가로는 수익률이 좀더 떨어졌을테다. 그렇다면 누가 다윗이고 누가 골리앗인가? 적어도 거대한 헤지펀드가 골리앗인 것은 잘 알겠다. 그럼 300억 원의 수익을 낸 개미는 다윗인가? 각국 증시의 변동성 우려를 키운 것은 헤지펀드인가, 아니면 개미인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주식 대박’ 소문이 곳곳에서 들리는 시절이다. 그러나 주변에는 많게는 수 천만 원을 주식에 담궈놓고 1, 2% 등락에 하루하루 표정이 바뀌는 필부가 대부분이다. 아파트 대출 갚기도 빠듯한 그들에게는 그나마도 큰 돈이다.

심지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많은 서민들에게 최근의 ‘불장’은 먼나라 이야기다. 그들은 주식 대박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물론 마다하지도 않겠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돌려받는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데 자산가치의 인플레이션으로 땀(근로수입)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떨어진다고 한탄한다. 그들이 다윗이고, 보통사람이다.

우리는 흔히 공매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분노한다. 그러나 10% 이상의 근로소득세를 내면서(소득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다), 주식으로 벌어들인 수익엔 그만큼의 과세를 하지 않는 ‘기울어진 세율’에는 그닥 분노하지 않는다. 왜일까? 땀 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가 직관적인 판단에 따른 투자 수익의 그것보다 보잘 것 없어서일까? 2021년에는 보통사람들의 땀이 승리하는 통쾌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bell10@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