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김광석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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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쯤이었나.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자동으로 들려주는 피아노의 등장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스타인웨이가 개발한 ‘스피리오(spirio)’라는 인공지능(AI) 피아노. 특정 연주자의 음정과 리듬은 물론이고 연주의 뉘앙스까지 그대로 담아낸 연주로 이목을 끌었다. 당대의 인기 피아니스트 랑랑, 나아가 이미 세상을 뜬 호로비츠나 글렌 굴드가 손수 피아노를 치는 듯했다. 그때, 유령의 소행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건반을 보고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드디어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마저 카피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논쟁적인 말들도 오고 갔었다.

그로부터 6년, 또 하나의 논쟁적 ‘사건’이 국내에서 펼쳐졌다. 최근 SBS TV가 모창, 골프, 주식투자 등 여러 종목에서 진행 중인 ‘AI vs 인간’ 프로그램. 모창 대결에서 고 김광석과 옥주현을 모창한 AI의 노래들은 거의 완벽한 재현에 가까웠다. 특히 김광석 모창 AI가 부른 김범수의 ‘보고 싶다’와 김광진의 ‘편지’는 경이로웠다. 김광석 사후에 나온 노래를 생전의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모창 AI는 특정 가수의 데이터를 넣어 주면 그 가수의 목소리로 어떤 노래든 부를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음정과 발음을 각각 분리해 학습한 두 종류의 AI가 상호작용을 하고 이 과정을 수만, 수십만 번 되풀이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감성적 요소를 추가하기 위해 마치 어린아이가 선생님으로부터 음악을 배우는 것처럼 악보를 통해 훈련하는 과정을 밟은 것도 특이하다. 그렇게 가수 특유의 창법과 발성, 호흡과 바이브레이션, 심지어 미세한 숨소리의 재현마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그리움과 향수를 달래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축복이다.

그런데 AI가 흉내 낸 김광석의 목소리는 어딘지 밋밋하고 정형화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것은 지금 살아 꿈틀대는 소리가 아니라 과거의 박제된 소리에 가깝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미래라는 흐름 속에 순간순간 변화하는 가능성의 총합이자, 또한 이를 넘어서는 예측 불가능성으로 뒤얽힌 존재다. AI는 인간의 깊은 무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물론 언젠가는 AI가 인간의 가창력을 뛰어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학습하고 복제해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있다. ‘인간다움’ ‘생명 있는 것의 고유함’ 같은 것들이다. AI가 의미를 지닌다면 이런 측면을 일깨워서가 아닐는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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