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마을 공사장서 나온 유골함 일본인 혼령까지 위로한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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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부산 서구 아미동 놀이터에서 비석마을 위령제가 열렸다. 독자 제공

일제강점기 공동묘지터 위에 자리잡은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의 도시재생 사업 공사장 터에서 유골함이 발견된 후 위령제까지 치러진 일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지난해 11월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도시재생사업 현장. 옛 폐가를 다목적 건물로 만들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던 인부들은 깜짝 놀랐다. 공사장 터에서 유골함으로 보이는 흰색 항아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석마을은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피란민들이 집을 지은 곳이라, 인부들은 직감적으로 유골함의 주인공을 일본인으로 추정했다. 인부들은 공사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 이들의 원혼을 달래려고 결심했다. 인근 아미산 대성사를 찾아 사연을 전했다. 인부들의 이야기를 들은 대성사 주지 스님은 선뜻 위령제를 지내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23일에 열린 위령제에는 공사장의 인부와 주민 등 수십 명이 참석했다. 공사장에서 일본인과 한국인 귀신을 봤다는 인부의 증언을 토대로 위패를 2개 모셨다. 대성사는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 마을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위령제를 지냈지만, 이날은 인부들의 요청으로 별도의 위령제를 지냈다.

대성사 주지 무애스님은 "돌아가신 분들의 원혼을 달래고, 현재 사는 주민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냈다"면서 "몇 년 전에는 일본 스님들이 절에 찾아와 일본인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줘 고맙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들과 합동 위령제를 진행하려했지만, 코로나19로 아쉽게 무산됐다"고 전했다.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인 1905년 일본인들이 조성한 공동묘지 위에 형성됐다.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서둘러 돌아간 탓에 수습하지 못한 묘지들이 그대로 방치됐다가 한국전쟁 때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묘지 위에다 천막을 치고 살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비석 마을 곳곳엔 과거 묘지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비석은 가파른 계단 디딤돌 또는 집 주춧돌 등으로 활용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서구청은 비석마을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이 일대에 아미·초장동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역사적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예산 100억 원(국비 50억, 시비 25억, 구비 25억)으로 폐·공가를 리모델링해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피란 문화 등 역사적 자산을 보존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016년 착공해 올해 준공이 목표다.

아미동 비석마을 손정미 문화해설사(57)는 "아버지 세대들이 어린 시절 이곳에서 유골함 조각인 사금파리로 소꿉놀이를 할 정도로 흔했다. 이런 마음으로 공사 중 발견한 유골함 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원혼을 달랜 것”이라며 “비석마을의 가치를 시민들이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현·탁경륜 기자 kk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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