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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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사회부장

지난 4일 부산고법에서 역사적인 재판이 열렸다. 1990년 1월 발생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1년간 옥살이를 한 두 피고인에 대한 재심이었다. 이날 그들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듬해 11월 경찰에 구속된 지 30년 만이다. 판사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혹행위를 통한 자백 등 경찰이 제출한 사건 증거들이 법원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21년 수감생활이라는 고통을 안겨줬다. 이 자리를 빌려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검찰도 지난달 열린 이 사건의 결심공판에서 이들에게 사과하며 무죄를 구형했다.

낙동강살인사건 재심서 무죄
경찰·검찰·법원 모두 사과

사법농단 의혹 판사 첫 탄핵소추
검찰 수사권 조정, 공수처 출범

공적 기관들 존재이유는 봉사
국민 신뢰 잃는 순간 무너져


30년 만에 누명을 벗던 날, 이들은 가짜 살인범을 만든 고문 경찰의 신원 공개를 요구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겠느냐. 그 사람들은 악마다.” 무죄 선고 다음 달 이뤄진 경찰청의 공식사과가 이들의 분노를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에 대한 고문 의혹은 이미 수사 단계에서 불거졌다. 1992년 8월 4일 자 <부산일보>는 ‘물고문을 받고 범행을 허위로 자백했다’는 이의 고발을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언론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기사가 재심 증거로 제출됐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1988년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씨도 지난해 12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여기에서도 경찰의 가혹 행위와 부실 수사가 드러났다. 이춘재가 진범이라는 사실이 ‘진짜 과학수사’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묻힐 뻔했다. 이 사건들은 과거에 경찰, 검찰, 법원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형법의 철학은 지켜지지 않았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이 열리던 날, 국회에서는 사상 첫 판사 탄핵소추가 의결됐다. 대상은 부산고법 임성근 부장판사였다. 임 부장판사는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재판 진행에 간섭하는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다. 그날 오전에는 임 부장판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간의 지난해 5월 대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김 대법원장는 거짓말쟁이가 됐고, 대법원마저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상관과의 대화를 녹취한 것을 보면서 ‘판사도 별것 없구나’라고 생각하는 시민들도 있다. 논란이 어지럽지만 출발은 ‘사법농단’ 사건이다. 1심 재판부가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핵심은 공정성이다. 공정성이 의심받는 순간, 뿌리까지 흔들린다. 공정하기 위해 독립적이어야 하고, 독립적이기 위해 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검찰의 처지는 더 구조적이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간 갈등에서 보듯 양 측의 공방은 계속된다. 지난해 12월 법원의 징계 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얼핏 검찰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의 힘은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많은 권한을 경찰에 넘겨야 하고, 결정적으로 지난달 21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출범하면서 기소독점권마저 빼앗겼다. 바야흐로 경쟁체제를 맞은 것이다. 상대편의 ‘자충수’ 말고는 우군이 별로 없다는 것이 검찰로서는 외로운 일이다.

올 7월 자치경찰제가 시행된다. 외사 경비 등은 국가경찰(1부), 수사 기능은 국가수사본부(2부), 교통 생활안전 등은 자치경찰위원회(3부)가 맡는다. 말 그대로 ‘한 지붕 세 가족’ 체제다. 쪼개진 조직에서 행여 사각지대는 없을지 걱정이 앞선다. 경찰이 과연 자치능력과 자질을 갖췄는지 의구심도 남아 있다. 최근 음주운전, 차량절도, 도박 등이 잇달아 터져 지난 4일 공직기강 특별경보까지 발령됐다. 경찰권력 비대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경찰의 힘이 막강하던 시절 발생했던 두 재심 사건이 이를 역설하는 듯하다. 새 체제의 장점은 살리되, 단점은 줄이는 게 숙제다. 다른 한편으로 ‘수사권 독립’이라는 꿈이 현실이 됐는데도 경찰은 아직 좌표 설정을 제대로 못하는 느낌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존재라는 사명감보다는 부디 큰일 없기를 바라는 듯 몸을 사린다.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 있다. 시민은 든든한 우군이면서, 촘촘한 감시자다. 눈높이를 맞추고 귀를 열어야 한다. 시민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우군을 늘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른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로다. 거대 여당의 힘이다. 국민들이 힘을 줬고, 평가도 국민들 몫이다. 새삼 되새겨야 할 것은 공적 기관들의 존재 이유가 ‘국민에 대한 봉사’라는 사실이다. 행세보다는 제 구실을 해야 한다. 국민들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무섭게 받아들이자. 무신불립(無信不立)이 괜한 말이 아니다.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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