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나’라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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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라이프부 차장

“돈을 내지 않고 사용한다면 당신이 상품이다.”

미국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디지털 경제 전문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무료 디지털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이미 그 자신이 상품이다. 예를 들어 구글 계정 정보에서는 이른 바 ‘더 유용한 광고’를 표시하기 위해 최적화된 나의 ‘광고 개인 설정’을 볼 수 있는데, 내 경우는 무려 195개 키워드가 나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간혹 헛다리를 짚은 것도 있지만, 자녀 유무, 가계 수입, 직장 규모까지 특정된 리스트는 나의 구글 검색 기록, 유튜브 시청 기록,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한 다른 서비스의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제시됐다. 그러니까 소비자는 공짜 검색과 영상의 대가로 구글과 그의 파트너들에게 나의 데이터를 기꺼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IT 업계를 달군 두 공룡, 애플과 페이스북의 전면전에는 이와 같은 맥락이 있다. 애플이 자사의 운영체제인 iOS 최신 버전을 개편하면서 이용자들이 앱을 설치할 때 맞춤 광고 제공을 위한 검색이나 사이트 방문 기록 추적 여부에 대해 ‘비동의’를 하지 않으면 허락한 것으로 보는 이전의 방식 대신 명시적인 동의를 구하도록 한 것이다. 애플이 1월 공개한 ‘개인정보 수집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앱 한 개당 평균 6개의 추적기가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 거래 시장은 연간 227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타깃 광고’의 대표 주자 페이스북은 즉각 반발했다. 애플의 조치로 소상공인이나 앱 개발자가 피해를 보고, 소비자도 광고 기반 무료 서비스나 맞춤 광고 감소로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는 논리다.

사실 광고에 대한 최근 소비자의 인식은 복합적이다. 애플의 조치를 두고 한 여론조사업체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85%가 “앱 추적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새 타깃 광고의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특히 시장의 주도권을 쥔 MZ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는 광고도 하나의 콘텐츠라고 본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15~34세 조사를 보면 92.2%가 유튜브 영상 광고를 크리에이터에 대한 구독료 개념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답했다. MZ세대 트렌드 뉴스레터 캐릿에서는 일부러 검색 기록을 남겨서 타깃 광고를 유도한다는 인터뷰가 소개되기도 했다.

일단 여론전에서는 “전 세계 소상공인들과 함께 애플에 맞서 싸우겠다”는 페이스북보다는 “데이터 착취와 선택 아닌 선택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은 칭찬받을 자격이 없다”는 애플이 우세하다. 이런 갈등이 결국 애플이나 넷플릭스 같은 유료 구독 모델과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무료 광고 모델의 패권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들도 나온다.

그러나 부와 권력의 토대가 되는 핵심 자산이 과거 토지와 노동력에서 갈수록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와 같은 결정이 정치나 시민의 합의가 아니라 거대 IT 기업의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잘못되었다. 개개의 시민이 자신의 데이터를 어떻게 보호하고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며, 어떤 기준으로 활용하도록 할 것인가. 정부에서, 국회에서, 학교에서 이 문제를 보다 더 많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i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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