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집과 건물은 자연·유행·건축 기술과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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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사연/신동훈

요즘엔 건물 외관이 대부분 유리로 되어 있는 건물이 많다. 서울 잠실 롯데타워가 대표적이다. 부산에도 이런 건물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과연 이 건물의 유리 면은 벽체인가? 아니면 창문인가? 사실 이를 딱 구분 지어 말하기는 힘들다. 벽체와 창문의 관계 또한 규정하기 힘들다. 굳이 표현하자면, 서로 섞여 중화된 관계라 할 수 있다.

TV 채널마다 ‘먹방’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에는 ‘나의 판타집’(SBS),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JTBC), ‘건축탐구 집’(EBS) 처럼 집이나 건축 관련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프로그램을 통해 잊고 있었던 ‘집’의 본질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각자 마음속에 간직한 드림 하우스는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고, 또 집과 사람, 공간에 관한 이야기도 펼친다.

집에 대한 기본 지식·이해 돕는 교양서
창문·방·마당, 배열·구조 등 쉽게 정리
사람에 열려 있는 마당과 담, 특히 강조
전통 기와 등 우리 옛날 집도 상세 분석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접하다가도 건축이나 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좀 더 있었더라면, 프로그램이 더 쉽게 다가오고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집에 대한 관심에 부응이라도 하듯 집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 나왔다. 따비에서 최근 발간한 신동훈 건축사의 <집의 사연>이란 책이다. 책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집의 창문, 방, 방의 배열, 외양, 마당, 담, 집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제로 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요컨대 창은 왜 거기에 그런 크기로 나야 하는지, 방들의 배열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사람이 활동하는 마당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구경하는 마당을 만들 것인지 등등. 한데 그 풀어내는 방식이 좀 색다르다. 흡사 창문이나 방이 자신에 관한 사연을 들려주는 것 같은 형태를 취한다.

먼저 창문이다. 저자는 “창문은 없어 봐야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아는 존재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창문의 크기, 주변 장식, 모양 등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요컨대 창문이 주변 장식으로 지붕과 기둥을 가졌을 때는 그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장식 덕분에 우아하고 화려한 자태는 물론이고, 향긋함까지 느껴지는 창문을 소개한다. 소위 한국의 전통 건축 살덧문 중 꽃살문이 그렇다는 것. 아름답기도 하지만 꽃장식 때문에 바람 불면 꽃향기가 내게 솔솔 불어오는 착각에 빠진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빛의 교회’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십자가를 그린다. 이때 창문은 빛으로 신(God)을 이야기하는 창문이 된다. 창은 이렇게 때로는 가리고, 때로는 열면서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존재다.

저자는 방은 사람을 온전히 혼자 있게도, 다른 사람과 만나게도 해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또 그런 방들을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아파트 안 방의 구조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새로이 구조를 개발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탈이 없고 편하다는 안이함과 게으름에 빠져 있다”고 말이다.

마당과 담이 어떻게 집에 사는 사람의 행동반경을 결정하는지도 배우게 된다. 마당이 바깥으로 열리는가 아니면 안을 이어주는가, 또 담의 높이, 즉 담이 자연과 외부를 얼마나 막아주는가가 집에 사는 사람들의 안락함, 프라이버시를 보장한다. 저자는 사람에게 열려 있는 마당과 담을 강조한다. 아무나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아파트 단지를 두고 “(잘 가꾸어진)아름다운 마당도 좋지만, 쉽게 접할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일 테다”라고 꼬집는다.

책은 우리 옛날 집도 자세히 들여다본다. 저자는 얇은 살과 창호지로 이루어진 살문을 두고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지혜롭게 자리 잡고 있고,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칭찬한다. 또 건물 외양과 관련해,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탄생하는 구조적 성질을 기반으로 하는 생생함의 멋, 그 감흥을 우리의 전통 기와집에서 찾는다. 오늘날 노출 콘크리트가 있다면, 우리 전통 기와집엔 그대로 드러난 지붕 밑 서까래와 대들보, 공포, 배흘림기둥, 주춧돌이 있다고 얘기한다.

“모든 집과 건물은 때로는 자연, 때로는 유행, 때로는 건축 기술의 진보에 기대어 하나같이 제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꿈꿀 때, 내가 살 집의 창은, 방은, 마당은, 담은 어떤 사연을 들려주는 집이었으면 좋을지 한번 생각해보자.” 저자의 제안이다. 신동훈 지음/따비/272쪽/1만 8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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