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창조성이 인간은 물론 세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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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창조하는 뇌…/디크 스왑

는 ‘뇌의 창조성이 인간과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풍부하게 살핀 책이다. 네덜란드 인지신경과학자인 저자가 미술 음악 신경생물학 등을 폭넓게 아우르며 뇌에 관한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

먼저 뇌의 창조성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신생아의 뇌 무게는 350그램이다. 이는 뇌 연결망의 75퍼센트가 이제부터 형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좋은 자극을 받으면서 자라느냐에 따라 인간의 창조성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가 틴토레토의 1575년 작 그림 ‘은하수의 기원’은 어머니 품에 안겨 젖을 먹는 아이 모습을 신화적으로 그렸는데 어머니 가슴에서 은하수 별빛이 쏟아지고 있다. 부모의 사랑이 인격을 형성하고 우주를 만드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의 대척점에서 신체적 정서적 성적 ‘아동 학대’는 정신의학적 문제, 극악한 사회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구겨진 종이는 영영 매끄러운 종이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새겨야 할 경고다.

부모의 사랑, 뇌 창조성에 상당한 영향
창조성 자극하려면 생각 탁 놓아버려야
뇌가 자동 결정, 인간은 자유의지 없어
인공지능, 인간 자리 차지는 아직 멀어

뇌는 신비롭다. 우리가 쉴 때도 뇌 95%는 움직인다고 한다. 멍 때린다고 할 때 활발히 작동하는 것이 ‘디폴트 연결망’이다. 이것은 자기 성찰, 자아, 정신 이론, 몽상, 자동적인 생각의 흐름, 특히 창조성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창조성을 자극하려면 집착하는 것보다 생각을 탁 놓아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 정신은 사막의 종려나무처럼 먼 곳의 양분을 섭취한다’는 말이 있다. 기존 구조에서 풀려날 때 창조성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추상화가 몬드리안은 창조기에 파리에서, 런던으로, 또 뉴욕으로 옮겨 다녔다고 한다. 환경 변화가 창조성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뇌 창조성의 핵심은 신경섬유의 연결망이다. 예술은 얄궂다는 말이 맞는다. 뇌 자체의 이상 때문에 뇌 연결망이 희한하게 작동해 창조성이 증폭·폭발하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뇌전증으로 천재적인 글을 썼고, 칸딘스키는 음악을 들으면 색채가 보여 추상화를 개척했다. 슈만은 신경매독으로 조증 기간에 영감을 환청의 방식으로 얻어 엄청난 창조력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알다시피 다른 방식으로 창조성에 대한 억제를 무력화하는 익숙한 방법이 술이나 약물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는 술을 많이 마셨고, 헤밍웨이와 존 스타인벡도 알코올 중독자였다.

책은 상식을 뛰어넘는 철학적 메시지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며 뇌의 작동은 탈중심적이며 자동적이다. 우리 뇌에선 엄청나게 많은 과정이 동시에 일어난다. 뇌에는 이런 과정을 통제하는 중앙기관이 없다. 뇌가 하나의 통일적 인격체로서 작동한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서운 사실이다. 요컨대 뇌세포들과 뇌 시스템들의 활동으로부터 우리의 결정이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그 직후에 의식적인 생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결정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쾌적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한다. 뇌가 자동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뇌의 결정에 작동하는 것은 유전적 요인, 불교의 ‘습’처럼 내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구축해놓은 뇌 연결망이다.

저자는 여기서 나아가 세계의 실상을 말하는 데까지 이른다. 생명의 발생과 진화의 바탕에는 물질적 과정만이 있을 따름이지 고차원적인 사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이 세계는 애초에 무의미하다는 거다. 이 막막한 곳에 인간은 던져졌다는 거다. 진화 과정에서 뇌의 ‘앞이마엽 피질’이 발생해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비로소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이 우주에 객관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뇌가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우리가 삶을 좋아하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의미라는 거다. 그것이 스피노자가 “모든 사물 각각은 자신의 존재를 고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 것의 깊은 뜻이다.

마지막 질문 하나. 인공지능이 인간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인간 뇌에는 800억~1000억 개 뉴런이 있다. 현재 인공지능은 1600만 개에 도달했고 40억 개를 목표 삼고 있다고 한다. 보건대 아직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뇌는 무궁하다. 디크 스왑 지음/전대호 옮김/열린책들/744쪽/4만 5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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