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조금 지쳤다면, 나무 한 그루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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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식물 탐색 세 단계

론토 주거지구의 나무 분포와 주민 설문을 겹쳐봤더니 구역마다 나무 열 그루만 있어도 정신적 스트레스는 추가 소득 1만 달러와 비슷한 규모로 감소했다. 최근 출간된 책 ‘정원의 쓸모’에 인용된 시카고대학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거리에, 숲에, 어쩌면 집 안에 두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식물의 가치를 보여준다. 좋은 도시가 공원과 숲에 예산을 쓰고, 코로나 시대 사람들은 산책과 식물에 관심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물이 깨어나는 봄, 도시에서 식물을 발견하는 세 단계를 소개한다.

1단계 오래 보라

가까운 곳 나무 2~3그루 정해
매일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을

습관 만들기 플랫폼 카카오프로젝트100의 프로젝트 ‘봄날의 꽃이 되거라 100일 나무 관찰기’의 미션은 가까운 곳의 나무 2~3그루를 정해 매일 관찰하고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전국의 참가자 50명이 가로수나 반려나무의 봄날을 끈기 있게 기록(사진)하고 있다.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 단지에서는 곧 잘릴 운명인 왕벚나무의 벚꽃이 만개했다가 졌고, 또다른 아파트 베란다의 반려화분 흙 밑에서는 뿌리가 열심히 새싹을 밀어올리고 있다. 어느 식물 애호가는 은행나무에서 잎과 함께 나는 연둣빛 암꽃, 숫꽃의 변화를 관찰했고, 한 초보 관찰자는 이제야 피기 시작한 꽃을 보면서 나무 이름을 가늠해보고 있다.

프로젝트 운영자는 숲 운동 시민단체인 생명의숲 시민참여팀의 활동가 이정현 씨다. 자연에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는 봄을 맞아 일상 속에서 주변의 식물을 관찰하면서 생태 감수성을 키우자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개설했다. 이 씨는 집 주변의 단풍나무와 감나무, 사무실 근처의 모과나무과 양버즘나무를 선택했다. “흔한 가로수도 매일 관찰하면 새로 발견하는 게 많아요. 단풍나무에 봄꽃이 핀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양버즘나무는 아직 잎이 나기 전이라 곧 큰 잎이 무성해질 날을 기대하고 있어요. 감나무에 감이 달려있지 않더라도 알아볼 수 있게 됐고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아름다운’ 식물의 매력을 통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프로젝트의 또다른 목표다. 인증사진을 공유하며 잎이나 꽃 피는 시기가 지역마다 다르거나 빨라지는 걸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상청이 2009년 낸 자료를 보면 부산의 벚꽃 개화일은 1980년대 4월 1일에서 2000년대 3월 26일로 6일 당겨졌다. 올해 부산 남천동의 벚꽃 개화는 3월 17일로 더 일렀다.

2단계 걸어 보라

부산 가로수만 16만 8000그루
지역 특성 살린 도시숲도 추천

거리만 나서도 식물은 많다. 부산의 가로수만 해도 올 3월 기준 664개 노선, 121만 7000㎞ 구간에 16만 8000그루가 있고, 중앙분리화단, 고가도로 하부, 쌈지공원, 옥상녹화, 하천녹지 등을 포괄하는 화단녹지대 2564곳에도 1278만 2000그루가 있다. 부산의 가로수 수종 상위 3위는 2010년 은행나무(30.9%), 왕벚나무(25.4%), 느티나무(10.0%)에서 지난해 왕벚나무(30.7%), 은행나무(21.0%), 느티나무(13.9%)로 바뀌었다. 유행과 기후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8.7%에서 4.7%로 줄고, 흰꽃이 다발로 피는 이팝나무가 1.1%에서 8.7%로 올라섰다. 후박나무나 먼나무 같은 난대성 가로수도 등장했다.

산책로에는 종 모양 꽃이 피는 꽃댕강나무, 붉은색 잎 홍가시나무처럼 키가 크지 않은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보라색 꽃과 사철 푸른 잎의 맥문동도 발밑에서 가로수 밑동 주위를 지킨다. 부산시민공원이나 송상현광장에서는 메타세콰이어길을 걸을 수 있다.

부산시는 지역의 특성을 살린 도시숲도 추천한다. 650년 된 도심 보호수 주변 건물을 사들여 빨래터 등을 복원한 사하구 괴정동 샘터공원 회화나무는 부산시 1호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금정구 산성터널 위에 조성한 수림뜨락은 터널 공사로 사라진 느티나무 숲길을 주민 휴식공간으로 되살려 부산시 아름다운 조경상 대상을 수상한 곳이다. 해운대구 우동항삼거리~동백섬사거리 구간의 가로수길은 겨울에도 빨간 열매가 달리는 먼나무와 향토수종 동백나무 등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최근 산림청 녹색도시 우수사례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부산시 안철수 산림생태과장은 “부산의 산림생태 관련 예산은 전체의 1%가 안 되지만 향후 도시계획에 조경이 수반될 것이고 생태 축 연결이나 미세먼지 저감 등 도시숲의 기능도 더욱 커질 것”이라면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도시숲들을 적극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3단계 깊게 보라

제각기 다른 식생을 품고 있는
바다·강·산의 숲을 찾아 보자

다음은 자연의 숲으로 들어갈 차례다.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에게 봄은 산빛의 변화다. 겨울산은 3월 중순부터 살풋 연둣빛이 돌기 시작해 4월 중순부터는 연분홍빛으로 물들고, 5월 중순부터 푸른빛이 짙어진다. 이 기간 부산 숲 속에서는 온갖 나무와 풀들이 잇따라 꽃을 피운다. 지금은 노루귀, 얼레지, 광대나물 다음으로 산철쭉과 제비꽃, 장딸기, 애기나리류가 개화할 때다. 이어서 찔레나무, 국수나무, 멀구슬나무 차례다.

“강 하구와 습지, 해안, 산을 모두 갖춘 부산의 숲은 제각기 다른 식생을 품은 보물인데도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사의 부산 봄 숲길 추천 목록은 길다.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식물 457종이 관찰된 생물다양성의 보고 이기대(4km)나 지리산 못지않은 두터운 식생이 나타나는 가덕도 동선 해안길(5.5km), 지금은 갈대가 푸른빛으로 물결치는 삼락둔치(4.4km)를 비롯해 0.5km부터 최대 6km 길이 숲길 15곳은 가까운 곳을 골라서 가도 좋다. 숲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늘 높이 솟은 큰 나무를 보고, 다음으로는 이맘때 가지에서 나오는 새순을 관찰하고, 다음으로는 고개를 숙여 숲속의 보물을 찾는 것이 그가 권하는 순서다.

25년간 우울증을 앓은 박물학자 에마 미첼은 책 ‘야생의 위로’에서 계절마다 산책길에서 나무 그루터기나 풀잎 가장자리 같은 세계에 집중하면서 걱정거리가 분산되고 정신이 현재에 뿌리내리는 경험을 했다고 썼다. 이성근 이사는 “식물을 알고 배우게 되면 지구가 우리만의 것이 아니고,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는 숲이 얼마나 신성한 곳인지도 깨닫게 된다”면서 “집 주위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본다면 숲이나 공원을 즐기는 깊이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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