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하고 아픈 우리 삶 그것이 소설을 쓰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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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소설가 네 번째 소설집 ‘누군가 아픈 밤’ 펴내

“끝내 소설이 되는 것은 삶의 아픈 이야기들이다.”

네 번째 소설집 (호밀밭)을 낸 정인(사진·63) 소설가의 말이다. 표지 그림은 푸르스름한데 인간의 아픔 불안 고독을 그린 뭉크의 것으로 작품집 분위기를 보여준다. 단편 6편이 실렸다.

먼저 노화와 질병의 아픔이 있다. 주로 부모-자식,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표제작 ‘누군가 아픈 밤’은 아픔을 호소하며 죽어가는 당신의 부모가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나는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죽던 바로 그 날 제주도에 놀러 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엄마의 호소에 악다구니까지 했던 딸이다. 이제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데 돌보는 할머니가 몹시도 아픈 날,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 딸이 전화를 받지도 않자 통한을 체험한 나는 안타까움의 욕설을 내뱉는다. “야! 이 천하에 나쁜 년아!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단편 ‘아무 곳에도 없는’은 암에 걸린 부모가, 자식들이 병간호에 지쳐 다투던 날 약을 먹고 자살한다는 아픈 사연이 나온다. 자식들은 대개 아픈 부모보다 유산에 더 신경을 쓰는 법이다.

다음으로 사회·역사적인 아픔이 있다. ‘이식의 시간’은 재일교포 3세와 라이 따이한(한국계 베트남인)의 아픔을 말하는데 이들은 ‘땅에도 하늘에도 닿지 못하고 허공에 걸려 있는’ 존재 같다. 일제강점기와 베트남전쟁에 뿌리를 둔 이들의 상흔은 끝끝내 그들의 삶을 잠식하는 것이다. ‘꽃 중에 꽃’은 일제강점기 위안부의 상처를 지닌 작은할머니의 잔인했던 세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두 작품은 다양한 얘기를 넣어 작품 볼륨을 풍성히 하고 있으며, 새로운 지평도 제시하고 있다. ‘이식의 시간’의 마지막 장면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작은 공간에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은 ‘연대’와 ‘동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고, ‘꽃 중에 꽃’에서는 힘들었던 작은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그 기억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에서 사회 역사적 아픔을 극복하는 방안에 대한 암시는 나와 있다. 하지만 노화와 질병이 수반하는 가족 간 갈등 아픔을 극복하는 방안은 딱히 나와 있지 않다. 그것은 누구나 치르는 것으로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성숙은 전자의 아픔에 대한 극복과 함께 후자의 갈등 아픔도 넘어설 수 있을 때 가능하지 않나 라는 메시지가 읽히는 것 같다. 다만 역사적 아픔을 극복하려는 뜻을 품은 사람들의 사회라면 후자의 아픔도 이기는 길을 낼 수 있으리라는 점이 짐작되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작가는 “우리 삶은 고단하고 아프다. 그것이 소설을 쓰게 한다. 하지만 소설을 못 쓰더라도 누구나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했다. 소설은 삶의 아픔을 추궁하고 문제화하면서 이 세상의 행복을 주문하는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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