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에 갇힌 네 사람 통해 비판한 ‘절대 권력의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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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제39회 부산연극제: 극단 아이컨텍 ‘필라멘트’

눈이 가려지고 손발이 묶인 네 명의 남녀가 밀실에 쓰러져 있다. 누가 왜, 그들을 이곳에 가두었나?

제39회 부산연극제 최종 경연작 세 번째 작품은 극단 아이컨텍의 ‘필라멘트’이다. 성형외과 의사 제이슨, 연극배우 캐럴, 학생을 가르치는 호프만, 검사 출신 변호사 데이빗. 제이슨은 처음부터 안대가 없었다. 캐럴은 쇠사슬에 묶인 남자들과 달리 홀로 밧줄에 묶여 있다. 호프만은 안대와 쇠사슬 모두에 묶인 상태다. 데이빗은 유일하게 손이 풀려 있다.

네 사람은 서로가 의심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밀실에 갇힌 이유를 찾고, 탈출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세 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달이 차오르면 등불을 들고 꽃을 꺾으러 다니는 거인에 대한 괴담과 개인의 자유·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생 정치단체 플로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계속되는 사람들의 실종 사건.

데이빗은 플로어가 범법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캐럴은 그런 단체가 생긴 이유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논쟁한다. 밀실 속의 갈등은 점점 더 커지고, 네 사람 사이에 숨어 있던 관계와 이들이 밀실에 들어오게 된 이유가 하나둘 밝혀진다. 연극은 밀실에서 주인공들, 주인공에서 밀실로 이야기를 끌고 다닌다. 관객은 밀실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각 주인공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박용희 연출가는 “절대 권력의 카르텔에 대해 비판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의료계 등 주인공들의 직업군에도 절대 권력에 대한 상징이 담겼다. 여기에 더해 밀실 안에서 ‘구속’의 정도에 따라서 권력 관계가 변화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박 연출가가 직접 극본을 쓴 이 작품은 2019년에 초연했다. 그해 열린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네트워킹 페스티벌과 제9회 서울미래연극제 무대에 올랐다.

‘필라멘트’라는 연극 제목에 대해 박 연출가는 “연출 의도를 읽어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게이트로 나라가 떠들썩할 때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를 고민했고, 창문 하나 없는 지하 사무실에서 깜빡이는 필라멘트를 보며 연극으로 현실을 고발해보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의문의 사고, 사건, 비리, 농단, 범죄, 추행, 관습 그리고 불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 바뀌는 날이 오면, 연극 ‘필라멘트’ 결말은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필라멘트’=23일 오후 7시 30분, 24일 오후 4시. 부산시민회관 소극장. 010-5226-4096.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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