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한 ‘노점상 재난지원금’… 부산 신청자 0명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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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주변 포장마차 노점 거리. 부산일보DB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주변 포장마차 노점 거리. 부산일보DB

정부가 사회공동체 차원이라며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 노점상을 포함(부산일보 4월 6일 자 6면 보도)했지만, 정작 지원금을 신청한 노점상은 이달 중순까지 전체의 0.1%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의 경우 2000여 개 노점 중 단 한 곳도 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정부 지원 정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전역 2118개 노점 중에서 정부가 발표한 노점 지원금을 받겠다고 신청한 노점상은 단 한 명도 없다. 이 노점상들은 포장마차와 좌판 노점 등을 운영하며, 사업자등록을 거치지 않은 미등록사업자들이다. 정부는 앞서 이달 6일부터 전국 노점 상인들에게 '소득안정지원자금' 50만 원씩을 지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회공동체 차원에서 길거리 장사를 하는 노점상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전국 4만 7865곳의 노점에 총 200억 원가량이 지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업자 등록’ 조건 50만 원 지급

세금 부담에 줄줄이 신청 포기

전국 다 합쳐도 고작 38곳 그쳐


하지만 중기부 '시도별 소득안정지원자금 신청 및 지급현황'에 따르면, 이달 6일부터 16일까지 지원금을 신청한 노점은 단 38곳으로 전국 노점 4만 7865곳 중 0.08%에 그쳤다. 부산은 물론 서울·대구·울산·전북·제주 등에서는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점상이 신청에 고개를 내젓는 이유는 사업자등록을 거쳐야 지원금 신청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앞서 노점상 지원금 지급 기준으로 '사업자등록'을 내세웠다. 세금을 내지 않던 노점상들이 납세 의무를 지는 사업자등록 절차를 거치면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뜻이다. 지원금 지급으로 일반 식당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점상을 지원하면서도, 사업자등록을 유도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사업자등록은 정부가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정한 기준이지만, 길거리 영업을 하는 노점상의 경제적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가 노점상 지원 계획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터무니 없는 지급 기준을 잡아 정부 지원 대책에도 정작 지원을 받는 노점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서면 부전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노점상 이 모(61) 씨는 "노점상 지원금 50만 원을 받으려면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을 하면 실명과 금융정보 등이 제공돼 세금을 내야 한다"며 "대부분의 노점상들이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정부는 노점상을 지원하겠다면서 노점을 그만두라고 경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서면 거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한 노점상은 "노점상이 세금을 내지 않아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알지만, 정부가 애초에 사업자등록을 하기 어려운 노점상들의 현실을 알면서도 이 기준으로 지원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며 "꼭 50만 원이 아니더라도 도로 점용료 인하 등 실질적으로 노점상에 도움이 되는 대책과 기준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광장에 위치한 노점. 부산일보DB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광장에 위치한 노점. 부산일보DB

반면 정부가 200억 원가량의 예산으로 노점상 지원금 지급을 추진하면서, 영세상인들은 여전히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세금을 내지 않는 노점상에게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을 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장 모(50) 씨는 "비록 사업자등록을 기준으로 했지만, 여태껏 세금을 내지 않던 노점상에게 거둬들인 국민 세금으로 지원을 하겠다는 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재난지원금이라면 어떻게든 받아내려는 영세상인과 '차라리 세금을 안 내는 게 낫다'며 지원금을 외면하는 노점상의 차이점을 정부는 왜 모르냐"고 토로했다.

부산시도 노점상들의 지원금 신청이 저조한 이유로 사업자등록에 대한 부담을 꼽았다. 부산시 도시계획실 관계자는 "현재까지 지원금을 신청한 부산 노점상이 없는데, 사업자등록이 지원금 지급 기준이라 납세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노점상 지원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원금 신청이 저조한 것"이라며 "5월부터 노점상 지원금 신청과 지급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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