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의 매스토피아] 수학 속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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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응용수학과 교수

TV를 켜고 새로운 뉴스를 들으며 아침을 맞는다. 학교에 가서 컴퓨터를 열고 각종 문서를 작성한다. 기하학과 창의력에 대한 강의를 한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 후,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수학 관련 논문과 책을 읽고 쓴다. 그런 일상을 32년간 반복하며 보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나의 하루가 수학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나의 수학 속 일상을 되새겨 본다.

아침에 일어나 켜는 TV와 컴퓨터의 화면은 여러 모양과 크기로 발전해 왔다. 화면의 가로 길이와 세로 길이의 비율은 2003년까지는 4대 3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2006년까지는 황금비인 16대 10으로 변하였다가, 2010년부터는 영화를 보기에 이상적인 16대 9로 이동하였다.

수학은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 아냐
생활 곳곳에서 흔적 발견할 수 있어
삶 속의 유용성에 매번 놀라게 돼

그런데 대각선의 길이가 28인치로 같을 때, 비율이 16대 9인 화면의 면적은 226제곱인치다. 비율이 4대 3인 경우보다 24제곱인치나 작다. 이런 사실은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업그레이드인가 다운그레이드인가.

운전해서 학교로 가는 길에 인도와 차도에서 둥근 모양의 맨홀 뚜껑들을 자주 보게 된다. 원은 어느 방향으로든 너비가 같기 때문에 맨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며, 평평한 바닥 위를 쉽게 굴러갈 수 있어 조금만 굴려도 간단하게 제 자리에 집어넣을 수 있다. 또 모든 방향으로 균등하게 힘을 받아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너비가 일정하면서 잘 굴러가는 도형은 원뿐일까? 19세기 독일 공학자 뢸로는 변의 개수가 홀수인 정다각형의 각 변을 원호로 만들어 둥근 다각형을 만들었다. 같은 너비일 때 둥근 삼각형은 원형보다 넓이가 작아서 맨홀 뚜껑으로 만들면 재료를 아낄 수 있다. 이처럼 뢸로의 다각형은 맨홀 아래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맨홀 뚜껑으로 쓸 수 있고, 그중에서 뢸로 삼각형은 재료를 가장 적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삼각형보다 원형의 뚜껑이 훨씬 만들기 쉽기 때문에 원형의 맨홀 뚜껑이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나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데 보낸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문서의 틀은 오랜 변천을 거쳐 발전해 왔다. 문서 페이지의 가로-세로의 비율을 ‘1대 R’이라 하고, 책의 안쪽-위쪽-바깥쪽-아래쪽 여백의 비율을 ‘1대 R대 2대 2R’이라 하면, 전체 문서 영역의 비율이 글자가 차지하는 영역의 비율과 동일하게 된다. 이 같은 비율로 문서 페이지를 설계하는 법은 중세 시대에 종이 제조업자와 인쇄업자의 비밀이었다. 종이 크기 변수 R의 선택은 전통에 따라 달랐는데, 인기 있는 R 값은 3/2인 경우였다.

점심 메뉴 중에 계란이 나온다. 계란은 축구공이나 럭비공 모양이 아니다. 아래쪽 부분은 좀 더 길쭉한 위쪽에 비해 평평하고 덜 구부러진 모양이다. 계란이 놓여 있는 책상을 몇 도만 약간 기울이면 계란은 구형이거나 타원형 물체와는 다르게 구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사면을 따라 휘어지며 돌다가 마치 부메랑처럼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때 계란의 평평한 쪽이 아래를 향해 구르면서 안쪽을 가리킨다.

만약에 당신이 울퉁불퉁하며 경사진 바위 위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고 생각해 보자. 알을 품고 있는 동안에 어미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알을 굴리려 한다. 그런데 움직임을 받은 모든 알이 하나도 멀리 굴러가지 않고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은 채 살아남도록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굴러간 알은 그 독특한 형태 덕으로 다시 안으로 굴러들어와서 외부 위험과 장애물로 살아남는다. 생명의 법칙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 컵 아래 부분에 누구나가 흔히 접하는 재활용 로고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1970년 앤더슨이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한 상징물이다. 상표로 등록되지 않아 공공 영역에서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이 로고는 바로 1858년 뫼비우스가 알아낸 안쪽 면과 바깥쪽 면이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 띠를 변용한 것이다. 한쪽이 긴 직사각형 종이 띠의 양 끝을 붙이면 납작한 원기둥이 되고 원기둥은 안쪽 면과 바깥쪽 면이 구분되지만, 띠를 한 번 꼬아서 붙이면 방향성이 없는 표면인 뫼비우스 띠가 된다.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할 때 한 번 꼬아 주면 닳아서 교체하는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난다.

누군가는 ‘수학이 발견되었다’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수학이 발명되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수학은 발견과 발명을 모두 모아 놓은, 즉 가능한 모든 패턴을 모아 놓은 무한한 카탈로그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운 수학의 유용성 속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생활이 바로 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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