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14) 푸른빛 산색을 담다, 김영재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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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재(1929~)의 ‘푸르름’이 가득한 화면에서는 시각적 청량감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에서 푸른색은 직접 산을 딛고 눈으로 누비며 체험한, 맑은 공기가 있는 청정지역 자연의 색과 공기층이 만들어낸 조화롭고도 신비로운 자연의 빛이기 때문이다.

‘산의 작가’로 알려진 김영재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부친이 교감으로 부임한 삼숭소학교가 있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보냈다. 소학교 시절부터 공모전에 입상하는 등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그는 일본에서 발간되는 ‘통신강의록’을 참고서 삼아 여러 가지 기법들을 연습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 미술대학이 없어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다. 6·25를 겪으며 군인으로 복무하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 진학해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게 된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영남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한다. 김영재는 1970년 신세계화랑에서의 첫 개인전 후 작가로서의 활동도 왕성하게 한다.

김영재는 1960년대에는 시대적 현실과 징후를 담은 어두운 풍경을 그렸다. 1970년대에는 산을 배경으로 풀이나 나무가 늘어선 평화로운 강변 풍경, 1970년대 후반부터는 실경에 기반한 자연의 정취를 담은 산 풍경을 표현했다.

김영재가 산을 주제로 작품 세계를 펼친 것은 1979년 알프스 등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여행을 통해 ‘큰 산’의 매력에 빠진 작가는 세계 명산과 한국 명산을 찾아다녔다. 자연 비경을 담기 위해 수많은 스케치를 했고 ‘산의 작가’로서 자신의 화풍을 확립한다. 1990년대부터는 바다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강변이든 바다이든 그의 풍경에는 늘 산이 함께한다. 그림 속 산은 파란색이 주를 이루는데, 이것은 그가 만든 색이 아니라 실제 풍경에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산색’이다.

‘설악산’(2003)은 전경 왼쪽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고 그 뒤로 광활한 산들이 겹겹이 펼쳐진 작품이다. 맨 앞의 나무는 검푸른 색을 띠며 그 뒤에 있는 산들은 채도가 높은 파란색에서 뒤로 갈수록 색이 옅어진다.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푸른 산 풍경은 산이 품고 있는 정취를 발산하고, 중첩된 반점들은 자연의 융기하는 생명력을 표현하고 산의 우직함과 깊이를 더한다.

조은정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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