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투기 ‘새 교본’ 수상한 땅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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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지역사회부

2018년 초 울산에서 유력 정치인 측근 비리 사건이 터져 전국이 들썩였다. 울산시 정무직 고위 공무원이 경찰 수사를 받으며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다. 이때 고위 공무원의 친형이 회견을 자처해 동생과 해당 정치인을 비호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민간인 신분으로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잔뜩 상기됐던 그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무렵 친형 A 씨가 지인 3명과 함께 땅 투기로 큰돈을 만졌다는 얘기는 몇 년 지나 최근에야 들었다. 이들이 농협 대출을 당겨 공매로 나온 땅을 사고 1년 만에 같은 농협에 배 이상 값에 팔아 수십억 원 차익을 남겼다는 사실을. 울산의 한 작은 농협이 무리하게 땅을 샀다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입는다는 사실도. 문제의 땅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비운의 땅이란 사실까지…. 이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란 생각에 씁쓸한 뒷맛이 가시지 않는다.

A 씨 동생은 자신이 울산 공직사회의 실세로 거론되던 시절 진행된 친형과 농협의 수상한 땅 거래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당연히 유력 정치인 또한 이 거래와 무관하다는 얘기였다. 두 형제는 수십억 원 땅장사도 알리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둔 가족이었을까, 아니면 회견장에서 감지됐던 것처럼 지방 권력의 한배를 탄 동지였을까.

경매도 아니고 ‘공매’ 근처에도 못 가본 대다수 서민은 A 씨 등의 ‘땅 짚고 헤엄치기’ 투기 방식에 혀만 내두른다. A 씨도 대단하지만, 같이 땅을 샀던 지인 중 한 명은 지분 대비 농협 대출비율이 95%를 넘었다. 남의 돈으로 거저 장사한 셈인데, 땅 투기의 새 교본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당 농협은 무엇을 바라고 이 땅에 속칭 ‘몰빵 투자’를 했는지 의문이다. 줄곧 살림이 어려워 농협중앙회의 합병 권고에 시달렸던 곳이다. 다음은 2019년 7월 한 언론이 보도한 이 농협에 대한 기사다. ‘○○농협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본점과 경제사업장, 로컬푸드직매장을 포함한 하나로마트를 한곳에서 운영하려는 큰 그림을 그렸다.(중략)종합청사는 2021년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준공한 뒤 2022년에 문을 열 계획이다.’

농협이 A 씨 등에게서 산 85억 원짜리 토지에 종합시설 신축 사업을 벌이겠다는 내용이다. 정작 이 사업은 농협의 큰 그림(?)과 달리 수익시설조차 제대로 갖추기 힘든 2층 규모 건물과 1층짜리 창고로 쪼그라들었다. 저층 택지 조성을 위해 지정한 제1종 주거지역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 조합원은 “지방 정권이 바뀔 줄 모르고 땅을 매입할 당시 용도 변경 같은 것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한다. 이 농협의 숙원사업이라던 종합시설 신축 공사는 현재 자금난으로 답보 상태에 빠졌다.

농협은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울산시 고위 공직자 2명에게 자문도 했다고 한다. 이들 공직자는 지난 15일 기자에게 “오래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농협에서)건축행위가 가능한지 물어왔는데,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사후 총회 논란도 모자라, 총회 회의록에 담긴 한 줄짜리 자문 기록마저 조합원 눈을 가리는 데 이용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정치인 최측근의 가족과 농협의 수상한 땅 거래를 곱씹다 보면 불현듯 간명한 생각에 도달한다. 무능하거나 부패하거나, 어쩌면 두 가지 다일지도. gsh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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