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범창 없고 배관 노출… 원룸 여성 노린 ‘판박이 범죄 환경’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 동래구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은 올 1월 벌어진 남구 성폭행 사건(부산일보 2월 1일 자 1면 등)과 판박이다. 범인은 방범창이 없는데다 배관까지 건물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원룸에 거주 중인 여성 피해자를 노렸다.

17일 오후 2시께 취재진은 동래구의 한 원룸을 찾았다. 이곳은 지난 12일 오전 6시 10분께 전자발찌를 찬 20대 남성 A 씨가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난 곳이다. 필로티 구조로 된 원룸 2층에 위치한 피해자의 집 창문 옆으로는 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건물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도시가스 배관이다. 통상 외부 노출이 불가피한 배관은 이를 잡고 건물에 타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가시로 된 구조물을 설치하지만 이 원룸은 이마저도 설치하지 않았다.

전자발찌 찬 동래구 성폭행 사건
방범사각지대 남구 사건 닮은꼴
침입하기 쉬운 건물 구조로 방치
방범시설 의무화는 제자리걸음

그 덕에 피해자와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던 A 씨는 전자발찌를 차고도 유유히 피해자의 집에 침입할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12일 배관을 타고 방범창이 없는 피해자의 집 창문을 열어 흉기를 든채 1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귀가한 여성을 성폭행했다.

이러한 건물 구조는 지난 1월 성범죄가 발생한 대연동 원룸과 동일하다. 두 곳다 건물 외벽에 가시구조물이 설치되지 않은 배관이 설치돼 있었고, 방범창도 없었다. 지난 1월 27일 새벽 40대 남성이 부산 남구 대연동 원룸에 침입해 혼자 사는 2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물건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여성은 원룸 저층부에 거주했으며, 방범창 등 범죄예방시설 설치되지 않아 남성이 건물 옆에 놓인 쓰레기 더미를 밟고 피해자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범창과 같은 범죄예방 시설이 중요한 이유는 범죄의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범죄과학연구소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침입을 180초 이상만 지연시켜도 범행을 포기할 확률이 75%나 된다. 방범창을 훼손하고 배관을 타고 올라가기 어렵게 건물 구조가 만들어져 있으면 칩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는 ‘타깃 하드닝’(Target hardening)이라고 불린다. 범죄자가 범죄 목표물을 정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의미다.

특히 이러한 방범 시설은 면식범이 아닌 경우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지난 1월 대연동 성폭행 사건과 지난 12일 동래구 사건 모두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모르는 사이었다. 용의자는 배관이 노출되어 잡고 오르기 좋은 구조물이 있고, 방범창 없는 곳을 평소해 물색해 범행 장소로 찍었을 가능성이 매우높다.

남구에 이어 동래구에서도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린 성폭행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지만 방범시설 설치 의무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부산시는 지난 3월 관련 시설물 설치를 의무화 하는 내용을 담은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 개정안’ 이를 강화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구·군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에 묻혀 개정안 제정이 보류된 상황이다.

부산시 건축정책과 관계자는 “16개 구·군에 공문을 보내 두 달 단위로 건축심의위원회가 신축 건물에 한해 범죄예방 시설을 갖췄는지 확인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