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불안과 두려움, 찬찬히 들여다보고 마주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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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보라.’

이서연 작가의 개인전 제목이다. 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이 작가에게 이 문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작가로서 코로나 시대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30대 초반 서울대 대학원에 갔어요. 미술사 공부를 했는데 출판 기회가 이어져 책을 세 권 정도 쓰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미술과 떨어져 있던 그는 6년 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주 간격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화가 김선두 교수의 작가 워크숍에 참여했다.

현직 역사 교사 이서연 개인전
유학 중 경험한 코로나19 불안
드로잉·영상·설치 작품에 담아

“어느 순간 더 깊이 들어가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직을 하고 영국 유학을 하러 갔죠” 2019년 7월 런던에 도착한 이후 미술관·도서관을 오가며 풍요로운 문화 환경을 누렸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2020년 3월 영국 정부가 ‘락다운’을 선포했다. “하루 한 번 산책하는 것 외에는 어디에도 갈 수 없었죠. 경찰이 검문하고, 사람이 없는 텅 빈 거리가 마치 영화세트장 같이 느껴지더군요.”

이 작가는 좁은 하숙방 안에서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인가’ 회의를 느꼈다. 한국에서 가르침을 받던 명상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자신 속의 분노, 불안에 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서연아, 찬찬히 봐라’고 말하시더군요.” 이 작가는 하루 한 번 주어진 외출 시간에 공원에 앉아 드로잉을 했다. 홀로 앉아있는 노인, 잔디에 누워 책 읽는 사람, 죽은 새, 흔들리는 나무, 마지막을 함께하듯 포옹한 연인. 드로잉 속 인물들은 역설적으로 평안해 보인다.

“그림을 그리면서 가슴속에서 일어난 감정들이 내 안에서 다독여지고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작가는 방안에서 자신의 몸에 ‘찬찬히 보라’는 문구를 쓰고 차를 마시는 일상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런던의 공원에서 그린 드로잉과 영상 ‘Look Quietly’는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다. 작가가 지난해 7월 런던 테이트모던과 세인트폴 대성당을 잇는 밀레니엄브리지에서 현지 예술가들과 펼친 삼보일배 퍼포먼스 사진도 선보인다.

21일까지 금정구 장전동 오픈아트스페이스 머지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불안과 두려움을 형상화한 설치 작품도 선보인다. 폴리에스테르와 와이어를 혼합한 대형 설치작품은 스멀스멀 올라오고, 뒤틀리는 신체로 다가오는 감정적 동요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시대 속의 불안은 코로나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이죠. 지금이 우리 속을 온전히 볼 기회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서연 개인전 ‘찬찬히 보라’=21일까지 오픈아트스페이스 머지. 051-527-8196.

글·사진=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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