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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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을 살 때 제조 연월일을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아차 하는 사이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을 넘길 때가 있다. 그러면 가차 없이 그 식품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사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못 먹는 건 아닌데, 왠지 찜찜한 생각에 먹는 걸 포기하게 된다. 한 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양이 하루 1만 4314톤이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 나오는 온실가스양이 885만 톤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만저만 낭비가 아니다.

국제적으로 식품기한 표시로 사용되는 것은 제조일자, 포장일자, 판매기한(유통기한), 소비기한(사용기한), 품질유지기한 등이 있다. 대체로 부패·변질 등의 우려가 높아 단시일 내에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에는 소비기한(Use by date)을, 비교적 저장성이 길어 변질 등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식품은 ‘최상품질유지기한’이나 ‘최소보존기한’ 등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1985년 도입한 유통기한(Sell by date) 중심의 일자 표시를 적용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유통기한은 제조·유통 과정을 고려해 식품을 섭취해도 안전한 기한의 60~70% 선에서, 소비기한은 80~90% 선에서 결정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을 식품 안전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여기고, 이를 폐기 시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유통기간이 만료된 식품도 개봉 전이나 제품이 손상되기 전 0~5도로 냉장 보관하면 우유는 최고 50일, 액상 커피는 최고 30일, 치즈는 최고 70일까지 섭취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동남아·아프리카 등 대부분 국가에선 소비기한을 도입했다. 2018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유통기한을 식품기한 지표에서 삭제했다.

식약처가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기존 유통기한보다 기간이 긴 소비기한 표시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식품 폐기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 보전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니 환영할 만하다. 다만, 10년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흐지부지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회에도 지난해 7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지만 진척이 없다. 소비자 안전도 챙기면서 식품 폐기량도 줄이는 소비기한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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