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가지고 놀던 대학생, 훼손된 산림 이끼로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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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 테크] 코드오브네이처

박재홍 코드오브네이처 대표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비큐브(B.cube) 사무실에서 ‘이끼 포자 산림 복구키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구 역사상 최초로 육상생활에 적응한 식물이 이끼거든요. 아무데서나 볼 수 있지만, 제거하는 데에는 애를 먹죠. 결국 다른 생물이 못 사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게 이끼라는 거죠. 그 생명력에 주목했어요.”

이끼에 빠져 게임하듯 이끼를 가지고 놀던 대학생이 결국 이끼로 창업까지 했다. 박재홍 ‘코드오브네이처’ 대표는 훼손된 산림환경을 ‘이끼 포자’로 빠르게 되살리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취득했다. 식물의 씨앗과도 같은 이끼 포자를 인공배양해 건조 포자로 가공하고 여기에 성장을 가속화시킬 특화 양액을 혼합해 휴면 상태로 보존한 뒤, 재난 발생 산림 지역에 살포하는 방식이다. 이끼 포자는 산소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영상 2~7도 사이 냉장보관을 하면 잠자는 상태가 된다.

코드오브네이처는 엘캠프(L-camp)로부터 씨드투자를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산림청이 주최한 ‘에프 스타트업’(F-Startup)의 대상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공동개발과 외부고문, 연구개발인력도 유치할 수 있었다. 소셜벤처 경영대회 고용노동부장관상, 부산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 부산시장상 등 성과를 올린 박 대표는 올 2월 부산대를 졸업한 후 오는 9월부터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와 사업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이달부터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업기업 육성공간 ‘비큐브’(B.cube)에 입주해 센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

올 2월 부산대 졸업 박재홍 대표
이끼 포자 배양 키트 개발 특허 취득
소실 토양에 뿌려 생태계 복구
산림청 ‘에프 스타트업 대상’ 수상
부산창조혁신센터 입주 지원받아
국내 데이터 축적 해외 진출 계획

■기후위기로 산불 위험에 노출된 산림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2019년 호주 산불은 9월에 발생해 그 다음 해 2월이 돼서야 진화됐다. 당시 산불로 남한 면적보다 더 많은 면적이 불에 탔으며, 캥거루와 코알라 등 1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죽었다. 지독했던 산불을 끈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닌 ‘폭우’였다.

수십 명의 인명피해를 냈던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또한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재해였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산불로 인한 피해는 이처럼 더 광범위해지고 있고, 잦아지고 있다. 우리 국토의 70%도 산지다. 산불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재해 지역을 복구하는 데에도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박 대표가 제시한 ‘이끼 포자배양을 통한 산림 재난 복구키트’는 산림이 사라진 토양의 사막화를 막고 생태계를 빠르게 복구시킨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이끼는 안개와 이슬을 포획해 수분을 효과적으로 고정하며, 토양 습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박 대표는 “성공적으로 활착하게 된 이끼들은 토양 내 질소와 인을 고정해 새롭게 자라는 수목의 뿌리 생장과 번식에 필수적인 매개체가 된다”면서 “이를 통해 산림 환경 복원이 가속화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토양에 뿌리기 전과 후, 일정 시간이 경과됐을 때마다 박테리아와 산성도 등 데이터를 수집해 토양 건강도 지표도 마련한다.



■이끼 박사, 이끼 사장이 되다

박 대표는 부산대 식물생명과학과 학생일 때부터 학계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이끼에 관심이 생겨 게임하듯 이끼에 대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이끼에 빠져살다 4학년이던 지난해 키트를 개발했다. 그 사이 학과 교수들이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주며 3학년 때는 학부연구생으로 들어오라는 제안까지 해줬다. 그 덕에 박 대표는 실험실에서 박사급들과 함께 실험 기자재들을 ‘가지고 놀 수’ 있었고 키트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끼는 습한 곳에서만 살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지만, 이끼 중에서도 건조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이끼들도 있단다. 박 대표는 “이끼 종류가 200~300가지가 되는 걸로 알고 있고,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텐데 우리가 잡초를 대하듯 이끼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이라면서 “이끼는 뿌리로 영양분을 흡수하지 않고 입으로 흡수하며, 다음 세대 포자를 퍼뜨리면서 사이클을 반복해 생명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발견한, 복구 키트에 적합한 이끼로는 쥐꼬리이끼, 아기들솔이끼, 모래이끼가 있다.

박 대표는 “이끼 키트는 비용 절감과 시공의 편리성 등으로 국내 훼손지는 물론 해외 훼손지 등 피해를 입은 곳이라면 어디든 이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토면적이 넓은 해외 여러 국가의 경우 한번 산불이 나면 우리나라 국토 면적에 버금가는 면적의 산림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의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출전을 준비 중이던 해외 스타트업 대회가 코로나19로 취소돼 결국 나가지 못했지만, 국내 시장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체급을 키워 해외로 진출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해외 산림복구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



■공기정화식물 등 이끼의 변신

박 대표는 대학 2학년이던 2018년 이끼 페인트를 만들어 벽면에 바르는 형태로, 게릴라 가드닝을 한 경험이 있다. 그 후 이끼의 생명력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최근 옥상정원이나 수직정원, 벽면녹화 등 공기정화능력이 뛰어난 이끼를 활용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박 대표는 “최근 생기는 카페들을 보면 공기정화용, 인테리어용으로 이끼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코드오브네이처 이끼의 장점은 산지에서 캐온 것이 아닌 무균상태의 이끼로, 산소 발생도가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량의 비료로 산성화된 토양의 지력을 회복하는 데에도 이끼 포자가 유용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도 이끼의 활용 범위는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연의 법칙, 자연에 숨겨진 코드라는 의미의 사명을 가진 코드오브네이처는 올해부터 사업을 본격화해 4인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 외 1인은 소프트웨어 개발, 1인은 자금 조달과 정책 연구, 1인은 마케팅 담당이다.

박 대표는 이끼 이후 칡에 대해서도 연구를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번식이나 성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끼처럼 도움이 되는 곳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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