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축의 대전환… 부산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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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국장·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하퍼 리의 소설 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법이지.” 인종차별과 편견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지만, 경영학자인 마우로 기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대변화를 예측한 자신의 베스트셀러 에서 사람들이 미래를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속성을 꼬집는 문장으로 빌려 썼다. 코로나19 사태처럼 예상하지 못한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 미래 예측에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는 의미다. 세상이 변한다는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두렵고, 이에 따른 불확실성이 극도의 불안감으로, 그것은 다시 공포로,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소통 부재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위험 감지 못 해
세상이 변한다 주장에 동의함에도
변화의 방향과 속도 두려워 멈칫
그러나 혁신·도전, 부산의 선택 명확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가 혹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를 정면에서 대응하기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을 비판하고 미래를 갈구하는 목소리가 되레 사회를 부정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세력으로 폄하된다면, 다양한 노력으로 혁신을 준비하는 시도가 오히려 규범을 어긴 사례로 지탄을 받는 풍경이 주변에서 결코 낯설지 않다면, 우리가 바로 그런 위험에 빠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안을 갖춘 미래 전망으로 주목을 받는 기옌 교수가 오는 10월 26~28일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해양포럼 기조연사로 확정됐다. 코로나19가 더 이상 광범위하게 확산되지 않는다면 온라인이 아닌 부산에서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더 커진 요즘, 그의 미래 전망을 직접, 그것도 부산에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뛴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많다. 세계해양포럼 사전등록 홈페이지를 언제 개설하느냐고 독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상 국내 첫 강연이다 보니 세계해양포럼을 기회로 별도 특강을 마련하고 싶다는 제안도 잇따르고 있다.

기옌 교수는 거대한 격변을 예고하는 축의 전환으로 8가지 물결을 예시했다. 새로운 산업혁명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고, 중국과 인도가 가장 큰 소비시장이 될 수 있단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보다 더 강력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더 부유해진다는 예측도 내놓았다. 노동자의 절반이 임시직 경제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불온한 전망은 섬칫했다. 밀레니얼 세대보다 더 중요한 세대로 실버 세대의 부상을 예견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노년의 재발견’을 강력히 주문했다.

이 모든 변화에는 새로운 기술이 이전보다 훨씬 더 ‘신속하게’ 도입된다는 전제가 깔렸다. 아프리카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기술 변화에 근거를 둔 듯하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광활한 사하라 사막의 태양광 산업과 수소경제 사이의 함수관계에 주목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기옌 교수는 한국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지정학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권역 안에 자리하고 있고, 이처럼 ‘하늘이 준’ 전략적 위치 덕분에 K팝과 영화, 드라마 등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강국, 삼성이나 현대로 대표되는 혁신과 창의의 중심지로 한국이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 혁신과 변화 속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볼 국가 역시 한국이라고 했다. 다만, 다른 나라와의 ‘철저한 협력’이 잘 이뤄질 때라는 단서를 달았다.

산업화로 대변되는 ‘한강의 기적’에 이어 찾아올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혁명 기회를 부산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기회의 흐름을 혹 부산이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특히 수소 선박, 스마트 항만, 블록체인 해양산업, 해양과학 기반의 스타트업 육성, 해사법원 유치, 특송장 확대 등 수많은 기회에서 부산이 제 몫을 찾아올 수 있을까. 수출 국가인 한국이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통해 성장 기회를 잡아야 하듯이 부산도 다른 도시와의 연대로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도시와 협력해야 할까.

‘탈 탄소’로 대변된 기술 혁신의 총알은 이미 총구를 떠났다. 기옌 교수는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의 시간, 부산의 시간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벗겨 내고 새로운 미래로 한국이, 부산이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의 대사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볼 수도,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도 없다. 혁신과 대량 실업의 갈림길을 직접 목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쓴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할지 모른다. 세계해양포럼은 ‘그 모든 것의 미래’를 가감 없이 듣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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