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나는 가끔 싱아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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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날이 더워지고 있다. 어제는 도서관 가는 길에 살수차가 물을 뿌리는 것을 지켜봤다. 도로를 흥건하게 적시고 느리게 운행하는 살수차는 미세먼지를 저감하고 도시의 지열을 내린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길을 가다 여러 대의 특수차를 봤다. 나뭇잎을 모두 빨아들이는 차나, 롤러가 달려 쓰레기봉투를 밀어 넣는 차, 길가에 쓰레기들을 모으는 차들을 말이다. 그런 차들은 항상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 동네에 소독차가 동네를 지나갈 때면 나와 내 동생들을 그 차 뒤꽁무니를 쫓고는 했다. 냄새 때문인지 굴뚝 속에 들어간 기분이 되기도 했고, 사라졌다 금세 다시 나타나는 얼굴과 나무와 풍경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한참을 달려 목이 칼칼하고 눈이 매울 때쯤 스르르 흩어지는 연기 속을 빠져나오면 나와 내 동생들은 어느새 멀리, 다른 동네에 와 있곤 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아주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독차 쫓아가던 어린 시절 아련해
지금은 그때 풍경·환경과 너무 판이

박완서 선생 10주기 ‘싱아’ 떠올려
너무나 상큼한 기억 속 그 이름…

‘싱아의 세계’는 살아 움직이는 자연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 늘 싱그러워야


이제 나는 그 차들을 따라가지 않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장소에 떨어지던 예전의 느낌과는 조금 다른 기분을 느낀다. 어린 날 내가 보던 풍경과 환경이 이제는 아니라고 느낀다. 미세 먼지가 많아졌고, 거리 쓰레기들의 종류와 양은 늘었다. 나무와 들판은 줄었고 대신 도로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바닷물고기들은 오염된 물속을 헤엄친다. 이제 바다 생물의 뱃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되는 건 흔한 일이 돼 버렸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마스크를 벗지 못할 거 같다.

나는 차를 쫓아가려는 막내의 손목을 세게 잡았다. 우리는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사들고 근처 공원에 가서 더위를 식혔다. 아이는 학교 환경교실에서 배웠다며 음료 페트병의 라벨을 뗐다.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았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잘했다고 말하고 푯말에 적힌 나무 이름을 읽어줬다. 눈향나무와 눈주목. 둘 다 이름에 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키가 작은 나무였고 낮게 무리지어 자라는 나무였다. 나는 아이에게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는 어느새 뛰어가고 없다. 아이들은 이 나무들을 기억할까? 나는 싱아를 떠올렸다.

올해는 박완서 선생님의 타계 10주기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를 다시 펼쳤다. 이 소설을 나는 고3 때 처음 읽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가끔 싱아에 대해 생각했다. 싱아가 뭘까? 궁금해서 물어도 내 주위의 어른들은 싱아를 잘 몰랐다. 분명 풀이름 같은데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내게는 더 예쁜 이름이 싱아였다. 싱아, 싱아 부르며 사라진 시절에 대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내게 다가올 시간에 대해 나는 오래도록 궁금해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싱아는 나도 한 번쯤은 본 식물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꽃은 6월에서 8월에 흰색으로 핀다고 한다. 어린 대는 신맛이 있으며 날로 먹는다,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진짜로 먹기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싱아라는 이름을 그토록 싱그럽게 떠올린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책을 덮고 가져온 쓰레기를 정리하며 놀란다. 이 많은 쓰레기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환경교실 안내문을 찾아본다. 다음에 도서관에 갈 때는 텀블러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주위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내게는 싱아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부산한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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