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부산 공직사회 성폭력 대응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공군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충격파에 휩싸인 와중에 부산의 공직사회가 조직 내 성폭력 피해에 대한 졸속 대응으로 또 다른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 7월 성희롱 피해를 접수한 해당 구청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둥 피해자를 회유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부주의하게 다뤄 실명을 노출하는 납득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 피해자의 전출 요구는 묵살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간 직제상 분리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일선 기초지자체의 성폭력 대응이 얼마나 허술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신상노출 등 ‘2차 피해’ 납득 힘든 대처
부산시·기초지자체 대응 체계 고민해야

이번 사건은 최근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의 진상과 판박이라고 할 만하다. 피해 신고 후 조직 내 처리 방식, 잇달아 터진 2차 가해, 책임 당국의 즉각적 조치 대신 피해자에 대한 회유와 설득 등이 그렇다. 군대뿐만 아니라 기업과 공공기관 등 우리 사회 곳곳의 다양한 조직 내부에는 여전히 성적 위력이 엄존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공군 부사관 피해자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우리 사회의 현 수준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번 성희롱 피해자 역시 고통스러운 기억에도 불구하고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해당 사실을 알리려 했을까를 생각하면 그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피해자는 일터로 복귀하지 못한 채 1년 가까이 휴직 중인데, 가해자들은 일체의 사과도 없이 되레 징계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낸 상황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피해자가 부산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시 차원의 성폭력 대응 체계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권력형 성폭력 사건으로 옷을 벗은 게 불과 1년 전이다. 이후 부산시가 성폭력성희롱근절추진단을 신설했지만 성폭력 대응 시스템은 일선 기초지자체로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부산 지역 16개 구·군 중 성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담당하는 고충상담원이 외부 전문인력으로 선임된 경우는 하나도 없다. 자체 인력으로는 업무 가중에다 피해자·가해자와의 안면 때문에 독립성과 전문성을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부산시가 성폭력 대응에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선 이번 일선 기초지자체의 성폭력 대응 과정을 꼼꼼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유사한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부산 지역 공공기관이 성폭력 대처에 있어 전문성과 독립성이 결여됐다는 점은 누차 지적돼 온 사안이다. 부산시가 어떤 식으로든 일선 기초지자체를 포함한 공공기관이 성폭력 대응 체계를 갖출 수 있는 현실적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 뒤늦게 땜질하는 식의 안일한 처방에만 기댄다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성폭력의 근절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