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체험을 유도하는 푸른 어둠의 시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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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필 ‘어둠과 물이 만났을 때’. 부산 프랑스 문화원 아트 스페이스 제공

푸른 밤의 시간 속으로 산책한다.

조은필 작가의 개인전 ‘어둠과 물이 만났을 때’에는 짙은 파란색의 오브제와 그것들이 만들어낸 공간이 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 프랑스 문화원 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전시는 20일까지 이어진다.

조은필 작가 개인전
‘어둠이 물과 만났을 때’

조 작가는 일상의 소재들을 특유의 보랏빛이 감도는 짙은 파란색으로 전환하고, 이것들로 특정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작업을 해왔다. “어릴 때부터 파랑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염색, 아크릴 물감, 시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파란색을 사용해서 비일상적이고 낯선 공간 체험을 유도했습니다.” 개인적 기호에서 공간을 통제하는 매개체로 사용하던 파란색에서 작가는 어둠을 읽어냈다.

현실 속 밤의 시간에서는 매일 걷던 길도 낮과 다르게 보인다. 코로나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밤 산책에 나선 작가는 일상의 익숙한 것들이 어둠에 의해 다르게 보이는 지점을 포착했다. “어둠 속에서는 시각적으로 불투명하기에 감각들이 더욱 발달한다고 합니다. 밤의 축축한 공기나 끈끈한 물기와 같은 촉각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려 했어요.”

어둠과 물이 만난 지점에 작가는 자신만의 산책길을 만들었다. 곡선으로 휘어진 파란색 판에 거대한 고사리 모양을 새겨 넣어 조명을 비춘다. 빛이 없어도 자랄 수 있는 것들, 물속의 수초를 형상화한 실리콘 오브제를 곳곳에 매달아 관람객이 전시장을 산책하며 ‘밤의 축축함’을 느끼도록 했다.

커튼 밖으로 외부 풍경을 보는 듯한 영상 작품도 있다. 컴퓨터로 그려서 만들어낸 이 작품은 커튼 밖을 물속 풍경으로 바꾸어서 보여주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검은색의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파란색을 어둠으로 설정했을 때 그보다 더 깊은, 심연의 어둠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나무의 나이테를 형상화한 작품도 바닥에 놓여 있다. 나무가 자라면서 생기는 나이테는 시간의 축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는 색을 칠해도 나무라는 것을 알아보더군요. 이전 작품의 주 소재가 나무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나무 아래에 서식하는 어둠의 식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누군가는 밤의 거리를 느끼고, 누군가는 거대한 어항 속에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밤이라는 어둠을 담은 시간은 낯선 체험이 가능합니다. 밤이 다른 시간, 다른 차원으로의 통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조은필 개인전 ‘어둠과 물이 만났을 때’=20일까지 부산 프랑스 문화원 아트 스페이스. 오금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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