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대학의 ESG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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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돈 편집부장

코이카 ○○○ 경영대상 특별상 수상, 롯데GSR ○○○ 경영 선포, 부산교통공사 ○○○ 경영 실천…. 최근 <부산일보>에 보도된 홍보성 기사들로 주로 ‘우리 이렇게 잘하고 있어요’라는 자랑거리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눈치챘겠지만, 제목의 ○○○에 공히 들어갈 것은 ‘ESG’이다. ESG는 친환경(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윤리적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기업 경영 요소를 묶어 이르는 용어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 위기, 지역과 직종이나 인종 사이에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지속성의 한계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업 평가 잣대에 포함해 책임 있는 경영을 요구하자는 움직임이다.

어느새 일상 단어가 된 ESG 경영
기업 홍보 단골 소재로 곧장 활용

사회적 역할 중시 시대 요구 놓치면
생존 위협하는 ‘칼’로 돌변하기도

대학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위기의 지방 대학일수록 더 살펴야


2000년대 들어 ESG 경영에 대한 필요성과 요구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사의 ESG 공시가 의무화된다.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될 예정이다.

당연히 기업의 ESG 행보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만큼 언론에 노출되는 ESG 이슈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뉴스 분석 사이트 ‘빅카인즈’를 검색해 보면, 최근 3개월간(6월 12일 기준) 국내 신문 54곳이 다룬 ‘ESG 뉴스’가 1만 904건에 달한다. 비트코인(7005건), 가상화폐(6860건) 등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관심이 큰지 알 수 있다. 3000시대를 질주하는 ‘코스피’는 7958건이었다.

문제는 ESG가 기업의 자랑거리를 알리는 수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교보생명이 서울 광화문 사옥 외벽에 내건 ‘광화문 글판’의 배경으로 쓰인 혹등고래 그림으로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글판에는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에서 발췌한 ‘살아온 기적이/살아갈 기적이 된다고//사노라면/많은 기쁨이 있다고’라는 시구와 함께 어부가 낚싯대로 대형 혹등고래를 낚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혹등고래는 무분별한 포획으로 한때 멸종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는 대표적 해양보호생물이다. 환경보호단체의 반발을 부른 건 당연한 결과. 포획금지 대상인 혹등고래를 낚는 그림을 두고 ‘어부의 기쁨’으로 표현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교보생명은 선명하게 새겨진 낚싯줄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수정하는 것으로 논란을 ‘일단락’지었다. 하지만 30년간 ‘광화문 글판’을 운영하며 쌓아 온 ‘감수성이 풍성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까지 일단락됐는지는 알 수 없다.

교보생명 사례는 차라리 가벼운 백신 접종 후유증 정도로 봐야 할 것 같다. 남양유업은 자사 유제품을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과장 광고를 했다 가업을 아예 접는 지경에 이르렀고, 아워홈 부회장은 운전대를 잘못 잡는 바람에 대표직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ESG 경영을 요구하는 대상이 어디 기업뿐이겠는가. 학문 연구와 함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역시 ESG 경영이 접목돼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신입생 모집난이라는 큰 위기에 직면한 지방대학이라면 더더욱 ESG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지역사회와 기업으로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좋은 학교’라는 평판을 받는 게 절실할 터이니까.

들불 같은 ESG 바람이 멈추지 않는 이상 대학 평가 역시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의 ESG 혁신이 스스로 목숨 걸듯 추구하는 졸업생 취업률을 끌어올리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더 급할 것 같은 지방은 조용한데 눈치 빠른 서울의 한 대학교는 조직개편까지 단행하며 ESG 경영을 선포하고 나섰다. 이 대학 이사장은 “(대학의)ESG 경영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구성원과 함께 ESG 경영 가치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부산의 한 대학이 떠오른다. 이 학교에서는 청소 노동자들이 100일 넘게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신입생 정원 채우기에 실패한 대학이 계약 해지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경영난을 덜려 하자 계속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읍소하고 나선 것이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대학생 자녀를 둔 50~60대 여성들이다. 시위보다 호소에 가깝다.

여성 지도자 배출을 앞세워 문을 연 이 학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안타깝게도 이미 학교 평판에 큰 손상을 입었다. 늦었다고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름이 지나면 곧 입시 철이다. 신입생들의 선택을 기다리기 전 기존 구성원으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고 상처를 치유할 기회는 아직 있다. 학교의 선택에 따라 지역사회 평판도 달라질 것이다. <부산일보>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청소 노동자를 기꺼이 품은 학교 소식을 전할 수 있기 기대해 본다. 부산 지역 대학의 ESG 경영 실천 사례로 남게 될.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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