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애물단지 ‘병원체’도 보물단지 ‘자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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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현 국립수산과학원장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우수한 대사능력 덕분에 항암제나 성장촉진 물질 등을 생산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최근 사스·메르스·코로나19 등 다양한 신종 질병이 발생하면서 병원체는 오히려 바이오산업을 비롯한 생명공학 산업의 핵심 소재로 부각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과 헬스케어 시장의 성장과 함께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병원체 즉, 병원성 미생물과 동식물 등 생물자원을 활용해 얻어지는 경제적 이익은 대략 70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 중 병원체를 주로 활용하는 제약과 생명공학 시장이 8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산생물 자원 시대’ 국가 경쟁 치열
병원체도 잘 활용하면 큰 경제 이익
생물주권 강화에 정부 역량 집중해야

이러한 생물자원은 2010년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되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자원에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는 2017년 우리나라에서도 발효되어 더 이상 생물자원을 무상으로 이용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생물자원 의존도는 2010년 약 40%에서 2019년에는 60%로 높아져 로열티는 물론 연구개발로 얻어지는 이익을 자원 제공국과 나눠야 한다. 바야흐로 ‘생물자원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가 간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수산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양식 생산량으로 보면 세계 10위권의 수산강국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양식 수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병원체이다. 다행히 이것은 인수 공통 병원체가 아니어서 사람에게는 큰 피해가 없지만 매년 여름철만 되면 면역력이 약해진 양식 어류가 바이러스성 질병에 감염되어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 해외에서 새로운 병원체가 유입되어 잘 키우던 새우를 모두 살처분하는 사례도 있어 그 주범인 병원체는 골치 아픈 애물단지로 여겨지고 있다. 2030년에는 전 세계 수산물의 60% 이상이 양식 수산물로 충당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양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산질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수산물의 생산성과 안전성이 모두 위협받을 수 있다 하겠다.

이에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국내 유일의 한국수산미생물자원은행(KoCAM)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수산 미생물자원을 수집·보존·활용하여 양식 수산물의 질병 연구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2002년부터는 대학과 민간에서 진단키트, 수산용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병원체를 무상으로 분양하고 있다.

2017년에는 민간 진료기관인 수산질병관리원과 협력하여 진료 과정에서 분리되는 병원체를 적극 수집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관리 인력과 비용 부족 등으로 검사 후 대부분 폐기하던 것을 모으는 것으로 지난해에는 이렇게 수집한 최신 유행 병원체를 사용한 ‘다가(多價) 백신’을 개발하여 양식 현장에 보급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현재 한국수산미생물자원은행에서 무상으로 분양하고 있는 미생물자원 중 수요가 많은 주요 11종을 미국 생명자원센터(ATCC)에서 실제 판매하는 금액으로 계산하면 약 19억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미생물자원을 이용하여 얻게 되는 생산유발 효과 등 산업 연관 효과는 반영하지 않은 수치로, 자원 구입비를 절감하는 것은 물론 연구개발로 발생하는 이익을 자원 제공국과 나눌 필요가 없어 고스란히 국내 기업의 순이익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양식 현장에서 질병을 일으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하는 애물단지, 수산생물 병원체도 이제는 자원으로 잘 관리하면 오히려 돈을 버는 보물단지로 화려하게 변신한다는 뜻이다.

수산생물 병원체를 보물단지로 재탄생시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수산생물 자원의 자립도를 높여 국내 생물주권을 강화하려면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하겠다. 자원을 둘러싼 국제적 흐름과 시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자원 강국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내 자원에 대한 우선권을 확보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2010~2019년 해외에 지급한 종자 로열티는 1358억 원인 반면, 벌어들인 액수는 26억 원에 불과했다. 각국의 생물자원 확보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 더 늦기 전에 국내 수산생물 자원에 대한 수집 확대와 체계적 보존, 지속 가능한 이용과 활용도 제고를 통해 우리나라가 수산강국을 넘어 생물자원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도록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모습을 머지않아 보게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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