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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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최근 연예기자 출신 모 유튜버가 방송으로 어느 여자 연예인의 남자친구 과거 직업과 개인사를 폭로했다. 게다가 특정 연예인들이 실제 가정사가 행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SNS에서 행복한 척 연기를 해서 일반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있다고, 3일 동안 SNS 계정을 닫지 않으면 사생활을 폭로하겠다고 예고를 하던데, 도가 지나친 방송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유튜버가 하는 말들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는 모르지만, 진실이라 하더라도 무슨 명분으로 그러한 폭로를 하는 것인지, 그러한 폭로 예고로 SNS를 닫으라고 강요하는 행태까지 보면서 형법적으로 이러한 행동을 규제할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유튜버 연예인 개인사 폭로에 눈살
개인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 쟁점

유엔인권위, 한국에 정식 폐지 권고
‘나쁜 놈 보호법’ 비판 소지 높아

공직자 감시와 언론 보도 위축
보완 입법 통해 폐해 시정해야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간혹 명예훼손죄 상담을 하다 보면, “왜 내가 없는 말 한 것도 아닌데 처벌받아야 하냐”고 일반인의 법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경우가 많고, 법대생으로 처음 형법 공부를 하면서도 좀 의아한 법 규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위 규정의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란이 되어 왔다. 법조계에서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서둘러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과 개인의 인격권 또한 국가가 보호해야 할 중요한 가치란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두고 헌법재판관 7(합헌)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고, 5년 뒤인 올해 초에 또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되면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집중됐다. 결과는 헌법재판관 5대 4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합헌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위헌 의견이 2인에서 4인으로 2배 늘어났다. 그만큼 최근 위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음을 알 수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개인의 인격권을, 표현의 자유는 자유권적 기본권을 표상하며 둘 다 헌법상 보장하고 있는 권리인데, 현재까지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보다, 인격권의 보호에 좀 더 중점을 둔 결과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애초부터 없거나 폐지가 되는 흐름이다. UN인권위원회는 2011년,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정식으로 권고한 바 있다. 또한,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중 1944명의 변호사가 참여한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9.9%가 해당 조항을 폐지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을 통해 공동체가 자유롭게 의사와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 근간이라고 볼 때, 사실적시 명예훼손 규정은 지나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취지이다.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경우를 넘어 임금 체불, 대리점 갑질 고발, 성폭력 등 범죄피해를 폭로하는 경우에도 실제로 그대로 적용돼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고, 이를 두고 ‘나쁜 놈 보호법’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진실한 사실을 보도한 언론을 상대로 보도 당사자가 법정 소송을 거론하며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가치는 국가,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인데, 국가, 공직자가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주체가 될 경우에는 국민의 감시와 비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외적 명예보호는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청구, 손해배상 청구 등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적 요소에 대하여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앞서 언급한 어느 유튜버의 행태와 같이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과 사생활의 비밀을 진실이라고 폭로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보호할 수는 없다.

결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진실한 사실이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 성적 지향, 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을 공개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필요성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모든 사실이 아닌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었는데, 본 조항의 위헌성을 감소시키면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조화롭게 보호한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 다만,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 그 법적 개념의 정립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국회가 헌재의 위헌의견과 국제사회 권고를 반영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공익적 목적 없이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공개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보완 입법을 통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폐해를 시정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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