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19. 살아있는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송주섭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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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섭(1954~2014)은 중앙대 출신 작가들로 이루어진 민중미술 동인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의 멤버로 활동했다.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이하 임술년)’는 단체의 창립연도인 1982년에 해당하는 임술년이라는 시대성과 우리나라의 총면적을 수치화한 ‘구만팔천구백구십이’란 장소성을 내포하고 있는 명칭이다.

‘지금·여기’에 뿌리를 둔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자 한 ‘임술년’은 극사실주의와 비판적 구상회화를 통해 시대에 대한 저항정신을 이야기했다. 삶의 생생한 체험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시대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미술을 이룩하고자 했다.

‘임술년’에는 이종구, 이명복, 박흥순, 송주섭, 전준엽, 황재형, 권용현 등이 참여하였으며, 이들의 활동은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다.

송주섭은 회화, 조각, 목조각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이다. 이 중에서도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지며 등장하는 흙이라는 소재는 작가에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시사함과 동시에 근원을 나타내는 소재이다.

풀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푸석하고 건조한 토양에서 생명과 인간 삶의 본질을 발견한 작가는 흙이라는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극사실적으로 토질을 묘사하기도 하였으며, 흙에 대한 관심을 소재에서 재료로 확장해 테라코타 조각으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대’(1982)라는 작품은 사실적 묘사의 극치가 느껴진다. 섬세한 피부 표현과는 상반되게 머리카락과 배경에 대한 표현은 지워진 듯 처리했다. 자연스레 관람자의 시선은 노인의 주름지고 거친 피부로 집중된다.

노인의 피부는 메마르고 갈라진 땅을 떠올리게 한다. 자갈, 풀뿌리, 거친 흙을 얼굴에 그대로 옮긴 것만 같은 노인의 피부는 시대의 질곡을 겪은 인간 생의 풍파를 드러내고 있다. 고단한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거친 피부는 순탄치만은 않은 생의 여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와 함께 노인이 입은 청재킷은 노인의 피부와 상응하며 이질적인 이미지의 충돌을 일으킨다. 이는 시장 개방을 통해 물밀 듯 들어오는 서양문물에 젖어가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변해가는 시대상 속 개인이 마주한 정체성의 혼란을 담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송주섭 작가는 그저 화면에 담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토대로 살아있는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내고자 했다.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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