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건축가의 드로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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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근래 주위 사람들의 전시회가 많이 열렸다. 펜데믹 비대면으로 중단되어 있던 전시들이 상황이 호전되자 슬슬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얼마 전 벡스코에서 열린 두 번의 아트페어도 성황이었다.

올해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서
부산 건축가들 드로잉 작품 전시

‘갤러리 H’서 열리는 ‘MAN 2’
건축가·화가 조인트 전시로 눈길

건축가 드로잉 건축의 한 과정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 장르 되는 것

작년에 추진되다가 중단되었던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를 다시 열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파크-하얏트 호텔의 한 공간에 건축가의 드로잉 작품을 소개하는 부스가 개설되고, 나를 포함해 부산에서 활동하는 몇몇 건축가들의 드로잉 작품이 초대되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액자를 만들었다. 이미 건축드로잉으로 정평이 있는 류춘수 건축가를 필두로, 부산 건축가들의 드로잉 작품이 6월 17일부터 6월 20일까지 전시되고 판매될 예정이다.

주목되는 전시회가 또 하나 있다. 보수동 ‘갤러리 H’에서 5월 28일부터 7월 30일까지 열리는 ‘MAN 2’라는 제목의 전시회다. 친구 사이인 건축가 조형장과 화가 송호준의 조인트 전시이다. 화가는 집을 그리고, 건축가는 집이 지어지는 과정의 드로잉 피스들을 전시한다.

“내가 설계한 공간에 너의 그림을 걸자”라는 학창 시절의 다짐을 바야흐로 대중들에게 보이게 된 것이다. 화가가 본 건축의 모습이 대형 캔버스에 그려지고, 건축가가 구상한 아이디어 스케치들이 깨알같이 전시장에 걸려 있다. 매우 의미 있는 전시이다.

건축가들의 전시회라 하면 설계나 완공 작품전을 말하기 십상이다. 단체와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건축대전 혹은 대학의 건축작품전이다. 하지만 이 전시회들의 관람 대상은 대체로 건축 전공자들에 국한되기 일쑤이며 전문적이므로 대중적이지 못하다. 반면 이번의 두 경우와 같이 건축가가 자신의 드로잉을 하나의 회화 작품처럼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경우는 다르다. 대중에 좀 더 친밀하게 접근함으로써 건축가의 드로잉은 건축의 한 과정에 머물지 않고 자체로 하나의 미술 장르가 되는 것이다.

여타 예술의 전시가 완성된 작품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건축드로잉의 전시는 실물 건축을 완성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발명품들을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 무수한 스케치를 남긴 것과 미켈란젤로와 같은 조각가들의 기초 소묘와 같은 것이다. 건축가들은 결국 현물의 건축으로 승부하지만, 그렇다고 구상 과정으로서의 드로잉이 간과될 수 없다. 그 건축의 숨은 뼈대이기 때문이다. 모든 건축의 시작은 상상을 이미지화하는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가들은 평생 드로잉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작업을 관찰하면, 하나의 건축을 구상하는 과정에 실로 수많은 스케치가 반복돼 그려짐을 알게 된다. 컴퓨터를 이용하고 그래픽 수단이 발전했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유명 건축가의 회고전에는 반드시 그들의 드로잉 작품들이 동반 전시된다. 오래전 김수근 선생의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린 거친 드로잉들이 내 마음을 쿵~ 하고 울린 적이 있다.

건축드로잉을 굳이 미술의 장르에 빗댄다면, 대부분 크로키, 에스키스와 같은 부류로 분류되겠지만, 때에 따라서 꼼꼼한 펜 터치와 화려한 채색 작업으로 자체로서 하나의 완성된 회화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건축가 류춘수, 승효상 등의 드로잉 작품은 미술품 컬렉터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작품들이다.

아무튼 건축가들의 구상 과정이 대중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이번의 두 드로잉전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후로도 많은 건축가의 드로잉이 자주 전시돼 그들의 비밀스러운 작업이 대중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건축의 품격이 시민의 가슴에 안개처럼 스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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