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의 월드 컷] 폭력에 멍든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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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국제팀장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몰려 있는 동예루살렘. 이른바 ‘분쟁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또 분쟁이 촉발됐다. 이스라엘 우익단체의 ‘깃발 행진’이 벌어진 것이다. 깃발 행진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승리로 요르단 영토였던 동예루살렘을 장악한 것을 기념한 행사다. 동예루살렘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권에겐 치욕이자 도발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승인했고, 나프탈레 베네트 신임 총리도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초 예정일보다 한 달여 늦은 지난 15일(현지시간) 결국 강행됐다.

경찰 추산 5000여 명에 달하는 우익 단체 회원들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고 ‘아랍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자극했다.

하마스는 깃발 행진이 열린 이 날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깃발 시위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국기를 들고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무너진 시가지를 행진하며 맞불 집회에 나섰다. 일부는 ‘폭탄 풍선’을 날려 보내면서 20여 건에 달하는 화재를 일으켰다.

폭력의 악순환이 무한 반복되는 이 같은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하마스 군사 조직 ‘에제딘 알-카삼 여단’이 마련한 여름 군사 캠프에 등록(사진)하는 모습에 시선이 꽂힌다. 태어날 때부터 전쟁에 길든 아이들의 선택은, 총을 드는 것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총을 들고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내는 아이들의 멍든 동심은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한다.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휴전은 한 달을 채 못 채우고 지난 16일 깨지고 말았다. 폭탄 풍선 등장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곧바로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네타냐후 전 총리의 12년여 장기 집권을 막은 ‘무지개 연정’이 새로 들어선 지 단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극우 정당부터 아랍계 정당까지 아우르며 이스라엘의 새 역사를 쓴 연정의 행보는 불안하기만 하다. 동예루살렘이 화합의 성지로 불릴 날은,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내일은, 또다시 멀어져 간다.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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