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이제 내 정보, 가져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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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에디터

부서 회식이 있던 날, 귀가하고서야 스마트폰을 분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터리가 나가서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구글의 위치 기록 기능이 떠올랐다. PC에서 구글 계정에 접속해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폰의 GPS가 남긴 위치 기록이 그 주점에서 멈춰 있었다. 위치 데이터가 이렇게 요긴할 수가! 이튿날 폰을 회수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용자 정보 마구잡이 수집
광고 노출, 수익 활용 부작용
애플, 구글 ‘차단 선택권’ 도입

이른바 데이터의 세기(世紀)
데이터를 피해 살아갈 수 없으니
데이터 문맹 깨치는 노력도 필요


하지만, 해외에 있는 구글 서버 어딘가에 나도 모르게 나의 행적이 착착 쌓인다고 생각하니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 구글 계정 ‘활동’ 항목에는 내가 방문한 사이트, 입력한 검색어, 실행한 앱이 미주알고주알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폰에 있던 사진과 동영상도 자동 업로드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대체 어떤 정보가 저장된 것일까. 구글이 수집한 내 정보에 대해 ‘테이크아웃’을 신청했더니 무려 15기가 용량의 파일 더미가 메일로 보내졌다. 까맣게 잊고 있던 옛 기억이 갑자기 소환됐다. 흐뭇한 추억도 있었으나 당황스런 장면도 있어 식은땀이 났다.

구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웹과 앱은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집하고 분석한다. 때로는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어 문제가 된다.

일본에서는 취업 사이트 리쿠나비가 구직자 정보를 인공지능(AI) 기술로 분석하여 구인업체에 팔아넘겼다가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저출산, 고령화로 일손 부족이 심화된 일본에서는 기업 간에 인력 쟁탈전이 치열하다. 구인과 구직의 갑을관계가 뒤바뀐 상황을 취업 사이트가 교묘하게 영리에 활용했다. 취업 인기 1순위의 대기업조차 ‘내정 사퇴’(합격자의 타사 선택)를 걱정할 판이라 리쿠나비가 제공하는 ‘합격 거부 확률’ 분석에 제법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

리쿠나비는 구직자들이 입력한 개인 정보나 이력서 제출과 면접, 내정 통보 기록을 AI 기술로 가공해서 구인 기업에 판매한 것인데, 당사자들에 그 사실을 숨긴 게 들통이 나 사달이 났다. 유저 데이터(사용자 정보)를 악용한 전형적인 사례다.

불법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정보가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널렸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의 활동 내역을 활용해서 광고 수익을 올리는 플랫폼의 대표 주자다.

예컨대 옥션에서 ‘4K TV’를 검색한 뒤 페이스북 앱을 열면 그 ‘4K TV’ 링크가 나의 타임라인에 노출되는 식이다. 온 국민의 손안에 쥐여진 스마트폰에 설치된 자기 앱에 광고를 띄우는 방식으로 페이스북은 국내 광고 시장을 석권했다.

페이스북만 나의 이력을 추적하는 게 아니니, 내가 검색했던 상품의 광고는 이 앱, 저 앱을 실행하는 동안 끝까지 붙어 다닌다.

데이터 추적형 광고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일상다반사가 됐다. 이용자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당연지사. 데이터 추적을 피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설정을 바꾸는 데 천신만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니, 굳이 그 수고를 하는 이가 드물다. 게다가 무료로 앱을 사용하는 반대급부이기도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치부되는 상황이었다.

최근 반전이 찾아왔다. 사용 중인 아이패드 운영체제가 업그레이드 되면서다.

앱을 실행할 때 자동 알림이 뜨는데,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애플의 프라이버시 정책 변경으로 앱이 활동 이력을 가져가려면 의무적으로 사용자 동의를 받게 했다. 이른바 ‘추적 투명성’이다. 이용자 입장에서 보자면 차단 선택권이 주어진 셈이다.

아이폰 사용자는 환영 분위기다. 꼭 필요한 서비스가 아닐 경우 데이터 수집을 차단하게끔 간단히 선택할 수 있다. 반면 페이스북과 같은 수익 모델을 가진 쪽에서는 반발한다. 추이가 어찌될까. IT와 인터넷 광고 업계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구글 역시 내년에 안드로이드 체제에 추적 투명성을 의무화할 예정이라 사용자의 차단 선택권은 대세로 굳혀지는 모양새다. 뉴스레터를 열었는지 여부도 추적할 수 없게끔 되는 등 개인 정보 수집이 까다롭게 바뀌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모바일 트래픽의 강자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독자적인 사용자 정보를 구축해서 애플과 구글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덜 받겠지만 역시 프라이버시 보호 원칙에서 추적 투명성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에서 생성되는 나의 행적이 나도 모르게 수집되고 분석되어 데이터로 활용되는 시대다. 이른바 데이터의 세기(世紀)다. 오늘날의 문맹은 이제 데이터 문맹으로 확장된다. 데이터를 피해 살아갈 수 없으니, 현명하게 이용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는 뜻이다.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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