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 논란 초량천 공공미술품, 여론수렴 건너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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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 논란에 휩싸인 부산 동구 초량천 공공미술 조형물(사진·부산일보 5월 9일 자 보도)이 설치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동구 주민 사이에서 조형물 변경 요청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자체의 안이한 공공미술 행정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20일 가 입수한 동구청 ‘공공미술 공모 신청서’에 따르면 동구청은 당초 지난해 12월 공공미술 사업과 관련해 주민 의견을 묻는 간담회와 공청회를 계획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초 계획과 달리 공청회나 간담회가 열리지 않았다.

동구, 지난해 말 하려던 공청회 코로나 등 이유 개최하지 않아
‘의견 수렴’ 명시 시 조례에 반해
“공사 마무리 후 수렴” 뒷북 해명

동구청의 공공미술 사업은 ‘초량천 예술정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초량천에 내달까지 조형물과 미디어 아트 등 총 13점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 중 대표작인 ‘초량 살림숲’은 시민이 기증한 3000여 개의 살림살이 도구와 폐자재를 쌓아 올린 6m짜리 거대 조형물이다.

동구 생활권 내에 ‘공공미술’을 설치하겠다면서도 주민이 이를 원하는지 제대로 된 의견을 묻지도 않은 데에 비판이 거세다. 초량 살림숲을 두고 ‘흉물스럽다’는 의견과 ‘주민들의 생활을 이색적으로 표현했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는 초량 살림숲이 관광객의 시선을 끌긴하지만, 현재 공사장 한복판에 설치되어 정비가 되지 않은 어수선한 풍경을 연출한다는 비판이 높다.

이에 대해 동구청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간담회를 개최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대신 SNS를 통해 홍보를 하고, 공공예술 프로젝트 작가진이 폐주전자 등 작품 재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이미 주민과의 공감대를 이뤘다는 게 동구청의 입장이다.

공공미술에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이 생략된 것은 부산시 조례와도 어긋난다. 부산시의 공공조형물 건립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공공조형물을 건립하려면 주민 의견이 포함된 의견서를 받아 부산시 심의를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부산시 역시 조형물의 파급 효과와 주민 의견을 심의하는 이 과정을 건너뛰었다.

부산시와 동구청, 어느 한 쪽도 주민 공간에 예산을 투입해 공공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공식 절차를 갖지 않은 셈이다.

시민의 일상을 예술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취지는 주민은 물론 시의회도 이해시키지 못하고 있다. 당장 시의회에서도 ‘졸속 추진’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부산시의회 김진홍 의원은 “주민의견서나 공청회 등 부산시와 동구청가 정해진 절차만 지켰더라면 지금과 같이 조형물 변경 요구가 빗발치진 않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주민 의견을 수렴해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구청은 뒤늦게서야 초량천 공공미술프로젝트 설치가 완료되면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최형욱 동구청장은 “7월 중 ‘초량천 예술정원’ 공사가 마무리되면 공공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주민들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예정이다”라며 “주민 의견을 수렴해 차후 조치를 논의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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