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외면 못 해” 집까지 사서 길고양이 보금자리 꾸몄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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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남부민동의 김남주 씨가 마련한 ‘고양이 하우스’. 김 씨는 길고양이를 위해 올해 초 14평 주택을 구입해 고양이 보호소를 만들었다. 부산 서구 남부민동의 김남주 씨가 마련한 ‘고양이 하우스’. 김 씨는 길고양이를 위해 올해 초 14평 주택을 구입해 고양이 보호소를 만들었다.

20일 오전 10시께 남항대교가 내려다보이는 부산 서구 남부민동 산복도로. 골목 사이 계단을 오르자 흰 벽돌 담장이 눈부신 ‘고양이 하우스’가 나타났다. 담 너머 유리창에는 고양이들이 저마다 캣타워에 자리를 잡은 채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 하우스에는 고양이 9마리만 산다. 집주인은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남주(61) 씨다. 김 씨는 올해 초 1억여 원에 14평 규모의 주택을 매입해 고양이들만을 위한 집으로 꾸몄다. 일종의 고양이 보호소다.

동아대 앞 식당 하는 김남주 씨

5년 전부터 고양이와 인연 맺어

남부민동 산복도로 주택 개조해

고양이 9마리만 사는 ‘궁전’으로

20일 오전 10시께 부산 서구 남부민동 '고양이 하우스'에 김 씨가 들어가고 있다. 유리창 안으로는 김 씨가 보호하는 고양이들이 캣타워에 저마다 자리를 잡은 채 바깥을 구경하고 있다. 고양이가 갑작스럽게 탈출하는 상황에 대비해 김 씨가 설치한 문을 3개 열어야 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20일 오전 10시께 부산 서구 남부민동 '고양이 하우스'에 김 씨가 들어가고 있다. 유리창 안으로는 김 씨가 보호하는 고양이들이 캣타워에 저마다 자리를 잡은 채 바깥을 구경하고 있다. 고양이가 갑작스럽게 탈출하는 상황에 대비해 김 씨가 설치한 문을 3개 열어야 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김 씨가 고양이 하우스를 만든 것은 인연을 맺은 생명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단지 길고양이가 귀엽다는 이유로 밥만 챙겨주고 사후관리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인간의 손길이 닿은 생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와 고양이의 인연은 5년 전 식당을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식당 근처를 배회하던 금순이를 비롯해 가게 창고에서 쪽잠을 자며 돌본 보리, 비가 많이 내린 여름에 구조한 미니, 주차빌딩에 갇혀 울던 은비, 꽃마을의 우연이와 차례로 만났다. 이들은 모두 전염병을 앓았거나 중성화가 안 돼 새끼를 배고 낳기를 거듭하다 김 씨에게 구조됐다.

20일 오전 10시께 부산 서구 남부민동 '고양이 하우스'. 이곳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김남주(61) 씨가 계단을 오르자 주변을 서성이던 길고양이가 마중을 나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20일 오전 10시께 부산 서구 남부민동 '고양이 하우스'. 이곳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김남주(61) 씨가 계단을 오르자 주변을 서성이던 길고양이가 마중을 나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김 씨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고양이들을 정성으로 돌봤다. 혹여나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 등으로 피해를 줄까봐 1마리 당 약 25만 원이 드는 중성화 수술도 시켰다. 길에서 임신한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지역 캣맘 커뮤니티를 통해 입양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김 씨의 손을 거쳐 입양 간 고양이가 10마리는 족히 넘는다.

하지만 식당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식당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았고, 식당 창고나 철망 간이 보호소에 고양이를 보호하는 것도 한계에 달하던 때에 현재 주택을 판다는 광고를 봤다.

김 씨가 꾸민 고양이 하우스는 전문가들이 ‘궁전’이라 일컬을 정도로 고양이에게 안락한 시설을 갖췄다. 고양이 캣타워와 숨을 공간, 새끼들을 위한 분리 공간 등을 갖췄다. 내부에는 CCTV를 2대나 설치해 김 씨가 식당에서 일을 볼 때도 고양이 상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3중으로 문을 설치하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내부 사진을 보고 “이 정도면 고양이 궁전 수준”이라며 “내가 입양 가고 싶을 만큼 잘 조성해뒀다”고 극찬했다.

김 씨가 고양이 하우스 안에서 일주일 전 태어난 새끼 고양이 4마리를 안고 있다. 김 씨는 김 씨가 고양이 하우스 안에서 일주일 전 태어난 새끼 고양이 4마리를 안고 있다. 김 씨는 "요즘 최대 고민은 갓 태어난 새끼들을 입양시키는 거에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김 씨는 새끼들을 모두 입양시키고 나면 어미 고양이인 '여운이'를 중성화 수술할 계획이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김 씨는 매달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스스로 ‘미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병을 앓거나 굶주리는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가족들도 김 씨를 각별한 고양이 사랑을 응원했다. 김 씨는 아들의 “고양이는 몇 년 살지도 않는데 사는 동안 행복하게 마음껏 돌봐주라”는 말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김 씨의 꿈은 고양이 보호 센터를 여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고양이 하우스에 거주하는 고양이를 늘릴 생각은 없다. 고양이들을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김 씨는 “경제적 능력만 되면 고양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며 “당장은 새끼 4마리를 입양 보내고 우연이를 중성화 수술시키는 게 급선무”라며 말했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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