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X-파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X-파일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일에 관한 문서나 자료를 말한다. 1990년대 같은 이름의 미국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멀더와 스컬리라는 두 FBI 특수요원이 외계인이나 각종 초자연적인 사건을 수사하는 이 드라마는 ‘달 착륙 조작설’ 등 온갖 음모론이 판을 치던 당시 분위기를 틈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선 X-파일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2005년엔 이른바 ‘연예인 X-파일’이 급격히 확산했다. 소문으로 떠돌던 연예계 최고 스타들의 스캔들을 적나라하게 정리한 이 문서는 일부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X-파일은 특히 정치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5년 한 방송사가 폭로한 ‘삼성 X-파일’이 그 예다. 안기부가 도청하고 녹취해 ‘안기부 X-파일’로도 불렸던 이 문건에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그룹과 정치권, 검찰 사이 로비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방송 당시에는 로비를 받은 검찰 간부들의 이름이 비실명으로 처리됐지만, 고(故) 노회찬 의원이 파일의 원본을 입수해 실명을 공개함으로써 파란을 일으켰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김대업 X-파일’ 사건이 터졌다. 부사관 출신의 김 씨가 당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정황과 관련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그러나 김 씨 자신은 훗날 명예훼손과 무고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요즘엔 ‘윤석열 X-파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윤 전 검찰총장이 검사 시절 특정 재벌과 관련된 사건을 덮어 줬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최근엔 보수 진영의 한 정치평론가가 해당 파일을 봤다며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해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파일을 누가 만들었는지, 내용은 무엇인지, 실제 존재하는 문건인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이렇게 논란만 커지니 일반 국민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의혹이 있으면 밝은 데 꺼내 놓고 검증받게 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 아닌가.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며 음험하게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거나, “거리낄 게 없다”며 눙치려는 시도 모두 옳지 않다. 당당히 검증받고 어느 쪽이든 문제가 있다면 처벌받는 게 정도일 테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