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누가 지역을 분노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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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서울서울서울 서울만 있는 나라.’ ‘이러면서 지방 가서 살아라 하는 게 모순 아니냐.’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방안 발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건희 기증관’ 건립 후보지로 서울 용산과 송현동 부지 2곳이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 운동’을 펼쳐 온 40여 개 지자체는 강력 반발했다. 문체부가 일방적으로 후보지를 서울 2곳으로 압축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발표를 지켜보며 ‘이건 뭐지?’ 생각했다. ‘입지 선정을 공모 절차로 진행해 달라’,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비수도권에 이건희 기증관을 세워 달라’는 지역의 목소리는 ‘1’도 반영되지 않았다. 문체부는 후보지 결정에 대해 국민의 문화적 향유라는 가치를 언급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또 지방 발전보다 더 큰 게 국익이라고 했는데, 국익과 지역 발전은 별개 요소인가?

문체부의 이번 발표는 마치 ‘대한민국=서울공화국’이라는 퍼즐 맞추기를 보는 것 같다. 소장품 활용위원장은 서울을 후보지로 정한 이유로 연구와 관리 보전을 위해 ‘경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수도권에 시설 소장품 인력을 다 몰아주고는, 이제 와서 지역에는 경험 있는 전문 인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첫 단추부터 틀렸다. 이런 논리면 지역에 ‘이건희 기증관’ 같은 시설은 영원히 만들어질 수 없다.

또 국립 시설을 만들면 그에 맞춰 전문 인력을 배치하면 될 일이다. 지역에 인력과 경험이 없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국가 균형발전을 생각하는 행정이라면 ‘없으니까 못 준다’가 아니라 ‘없으니까 새로 만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문체부가 지역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활용위원회에 지역 인사는 단 1명에 불과했고, 공청회 등 최소한의 공론화 절차도 없었다. 황희 장관은 공모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방의)행정력이라든가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갈 거라 봤다”고 대답했다. 한 문화활동가는 “지역 발전을 위한 시설 유치 노력은 지방 행정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어느 지방이라도 선정되면 좋은데 안 됐을 경우 (지역의)허탈감은 더 클 것 같았다”는 발언은 더 어이가 없다. ‘어차피 떨어질’ 지역의 마상(마음의 상처)까지 미리 고려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문체부는 이건희 기증관 입지 선정을 공모 절차로 진행했어야 했다. 경쟁 과열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들이 그렇게 유치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수도권 중심주의가 극에 달한 이 나라에서 지역의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야 했다.

문체부 발표 다음 날 식당에서 들은 시민들의 대화. “서울 사람은 부산 와서 살라고 하면 못 살거야.” “그런데 우리는 서울 집중이 너무 심한 거 같아.” 평범한 시민도 다 아는 ‘서울공화국’의 심각성을 문체부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알면서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역이 뭐 어쩌겠어’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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