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북항 땅을 샀다, 3만 4500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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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훤히 보이는 부산 북항의 땅 한 필지를 샀다. 생애 첫 부동산 투자, 기자는 감격스러웠다. 가격은 3만 4500원. 물론, 현실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에 기반을 둔 진화된 가상현실 ‘메타버스(Metaverse)’에서의 이야기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붐이 일면서 소외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메타버스’ 부동산 투자가 인기다. 가상의 땅을 현실 화폐로 거래하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비트코인식 확장 가능성을 주목하자’는 의견과 ‘거래 개념마저 희박한 사기’라는 의견 사이에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부동산 투자 소외된 2030세대
가상 현실 ‘메타버스’ 투자 인기
‘어스2’ 접속, 100㎡ ‘타일’ 구입
가상현실 땅 ‘E$’화폐로 거래
엘시티 부지는 외국 투자자 점령
“거래 개념 희박한 사기” 논란도

메타버스는 가상의 땅을 실제 돈으로 사고팔거나, 가상공간에서 공연을 열고 관람 티켓을 구입하는 등 말 그대로 ‘가상이 현실이 되는 세계’를 의미한다. 그중 ‘어스2’는 지난해 11월 호주 개발자 셰인 아이작이 만든 가상 디지털 지구다. ‘메타버스’ 구축을 최종 목표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지구 공간을 100㎡ 크기 사각형으로 쪼갠 ‘타일’로 사고팔 수 있게 했다. ‘타일’은 ‘E$’라는 화폐로 거래되는데 미국 달러와 동일하다. 해외 결제가 가능한 카드 정보를 입력하면 손쉽게 이 ‘타일’을 구매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인기 높은 땅은 메타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어스2’에 접속하자마자 얼른 해운대구로 눈을 돌렸다. 부산에서 가장 집값이 비싸다는 엘시티를 사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엘시티 부지는 이미 캐나다, 북한, 브라질 등 다국적 투자자가 점령을 마친 상태다. 엘시티 부근 타일도 소유자들이 타일을 경매에 부쳐 놓거나, 수십 개를 일괄매도해 버렸다.

기자는 황급히 ‘해수동’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 지역도 온라인에서는 ‘불장’이었다. 해운대해수욕장 타일은 죄다 북한 국적의 이용자가 싹쓸이한 상황. 인근 마린시티도 ‘마우스 놓을 틈’ 없이 타일이 매진됐다. 부산에서 평당 가격이 가장 높다는 수영구 남천 삼익비치는 도로를 제외한 타일이 전부 팔렸다. 동래구는 온천4구역 등 재개발 공사 현장을 중심으로 뜨거웠다.

아쉬움을 달래며 북항 재개발 부지로 눈길을 돌렸다. 다국적 온라인 투자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다행히 살 만한 땅이 남아 있었다. 가상에서만큼은 ‘영구 바다조망’을 갖고 싶어 북항 오페라하우스 예정지 인근 타일 1개를 3만 4500원에 샀다. 생애 첫 부동산 투자다. 생애 첫 투자 11일 차에 접어든 13일, 투자금 대비 10%의 수익이 발생했다.

올해 초부터 메타버스 개념이 주목받고,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어스2’의 타일값은 상승세다. 서비스 초반 타일 0.1달러 선이던 타일 가격은 이날 기준 미국 맨해튼은 60달러, 부산 해운대는 32달러까지 올랐다. 가상 화폐와 마찬가지로 가상 부동산도 한국인의 관심은 유독 뜨겁다. 한국인 이용자 투자금은 799만 달러(한화 91억 원)로 국적 불명 이용자의 전체 투자금액인 978만 달러(한화 112억 원) 다음으로 많아 세계 2위다.

‘어스2’는 땅 소유권을 사고파는 현재 1단계를 넘어, 2단계에서는 땅에서 자원 채취를 가능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3단계에서는 채취한 자원으로 건물을 짓는 등 본격적인 ‘메타버스’를 구축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한다. 실제 ‘메타버스’ 속에서도 재개발·재건축 추진위원회가 등장했다. 한 이용자는 북한 개성에 메가시티 건설을 위한 토지이용계획도를 공개하며 타일 36개 구입을 최소 조건으로 조합원을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

메타버스 투자를 놓고 온라인 설전이 뜨겁다. ‘어스2’ 이용자 커뮤니티 운영자 박 모(가명) 씨는 “메타버스 기술 자체의 발전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면서도 “어스2의 계획은 거대한 반면, 현재로서는 가치 매길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 의심을 아예 지우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가상 현실 전문가는 메타버스 속 부동산 투자는 그린벨트 토지를 구입하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맞는다고 조언한다. 의 저자인 강원대 김상균 교수는 “가상공간 속 부동산 가치는 그곳에 몰리는 트래픽을 기준으로 산정된다”면서 “명확한 개발계획이 있어야 가치가 많이 오를 텐데, 현재로서는 뚜렷한 개발 계획이 없으니 가상 부동산 구입은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그린벨트로 묶인 땅을 산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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